메뉴 건너뛰기

close

"북한은 6·15선언과 10·4선언을 언급했을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개성에서의 남북한 당국자 접촉 내용에 대해 이렇게 추정했다.

 

북한이 "개성공단 사업은 특혜이며, 이런 특혜를 준 것은 6·15선언 1항의 '우리민족끼리'와 4항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언들이 이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특혜를 줄 근거가 없어졌다. 국제수준으로 가기 위해 새로 협상하자고 이야기 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는 "남북이 22분간 만났는데, 정부 발표자료 3쪽 반 중에 북쪽 이야기는 10줄 정도인 것을 보면, 대화 전체가 다 공개된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 전 장관은 "PSI와 개성공단을 직접 연결시킬 줄 알았는데, PSI보다 더 큰 것을 걸고 나왔다"면서 "보수언론에서는 북측이 돈 때문에 저렇게 하는 것처럼 보도했던데 돈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남북 간에 서로 특혜를 주고받을 일 없으니 특혜를 철회해서 중국 수준으로 가겠다, 싸구려로 팔리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방점'은 북한이 '특혜를 줄 근거가 없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북한이 이번에 요구한 '개성공업지구 관련 기존계약 재검토 협상'도,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남북 대화 내용, 다 공개되지 않은 듯"

 

정 전 장관은 "북한이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여지는 있지만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입장이 정리돼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 발표자료도 북측이 대화하자고 매달린 것처럼 돼 있지만, 북한이 말하는 협상이 진정한 협상제의인지는 의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정부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PSI에 가입해봐야 북한 자극만 하는 것"이라면서 "이후 개성공단 관련 협상의 여지까지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래는 정 전 장관과의 문답 전문.

 

- 북한의 통보내용은 예상한 수준인가.

"PSI와 개성공단을 직접 연결시킬 줄 알았는데, PSI보다 더 큰 것을 걸고 나왔다. 보수언론에서는 북측이 돈 때문에 저렇게 하는 것처럼 보도했더라. 그런데 돈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남북 간에 서로 특혜를 주고받을 일 없으니 특혜를 철회해서 중국 수준으로 가겠다, 싸구려로 팔리지 않겠다, 아직은 먼 일이지만 미국 일본과 관계가 개선돼 경제협력사업을 할 때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 이런 것이다. 단지 남측에서 돈을 더 받아내겠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 북측의 통보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남북이 22분간 만났는데, 정부발표 자료 3쪽 반 중에 북쪽 이야기는 10줄 정도뿐이다. 자료만 보면 북한은 외마디 소리를 지른 것처럼 돼 있는데, 적어도 절반인 10분 이상은 얘기하지 않았겠나. 전체가 다 공개된 것이 아닌 것 같다.

 

북한은 갑자기 돈 이야기를 꺼내는 화법이 아니다.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할 때도 자신들의 핵심주장을 제시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굉장히 먼 길을 돌아오는 사람들이다. 정부가 발표한 보도 자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추측건대 북한은 6·15선언과 10·4선언을 언급했을 것이다.

 

북한은 개성공단 사업이 특혜이며, 특혜를 준 것은  6·15선언 1항의 '우리민족끼리'와 4항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때문인데 이 선언들이 이행되지 않는 상황, 즉 근본정신이 무시됐기 때문에 특혜조치를 할 근거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국제수준으로 가기 위해 새로 협상하자는 식으로 이야기 했을 것이다."

 

"남측 스스로 거둬들이게 하도록 복선 깔아놓은 것"

 

- 북한은 지난 연말부터 개성공단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번 조치는 어떤 수순인 것으로 보나.

"자기들의 조치로 개성공단의 폐쇄절차를  밟아가는 게 아니라 남측에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 수지가 맞지 않아서 남측 스스로 포기한다면, 자신들이 일방적인 비판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은 설득력이 있느냐, 국제적으로 인정될 것이냐 하는 것 보다는 자체 만족이 중요한 사회이다."

 

- 청와대 등 정부에서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는 취지에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남측 스스로 거둬들이게 하도록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다. 수지가 안 맞으면 어떻게 사업을 할 것인가. 중국은 제도적으로는 힘들게 하지만, 군인들이 들어와 막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가끔 군인들이 차단하기는 하지만 임금도 싸고 토지임대료도 내지 않는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는데 그런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 북한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기존계약을 재검토하기 위한 협상을 하자고 했다.

"물론 여지는 있다. 하지만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입장이 우선 정리돼야 한다. 정부 발표자료도 북측이 대화하자고 매달린 것처럼 돼 있더라. 북측 통지문 전문을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북한이 말하는 협상이 진정한 협상제의인지는 의문이다.  남측이 근시안적으로 협상이나 접촉을 생각하면, 북측도 간절하게 협상을 원하는 것처럼 보게 된다."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협상 지렛대로 쓰겠다는 의지 보여줘"

 

- 북한은 억류하고 있는 현대아산 직원 유아무개씨에 대한 접견도 불허했는데.

"이후 협상의 주체가 정부가 되느냐, 현대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임금문제는 현대 아산이 맡아서 했다. 어느 쪽이 협상 당사자가 되든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문제는 북측으로서는 협상의 속도조절에서 유력한 카드가 될 것이다. 북한이 이번 접촉과 무관하다고 잘라버린 것은 이후 지렛대로 쓰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 정부는 아직도 PSI 가입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  PSI에 가입해 봐야 북한 자극만 하는 것이다. PSI가 아니라 남북 해운합의서가 적용된다고 해봐야 마찬가지다. 이후 개성공단 관련 협상 여지까지 없애는 것이다."

 

- 이후 북한의 움직임은 어떻게 전망하나.

"북측으로서는 공을 남측으로 넘겼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PSI 가입 등에 대한 남측의 움직임을 지켜볼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중심으로 가고 싶어 한다. 얼마 전에 일본 언론에서 미국과 북한과의 접촉이 없어야 한다는 보도까지 냈던데 이는 역으로 북미간의 물밑대화가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북한은 더 이상의 강수를 두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미국 내 강경파의 입장을 키우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22일 오전에 "남조선 괴뢰가 군사분계선 표식물을 북쪽으로 옮겨다 꽂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행위를 했다"면서 "원래 위치로 옮기지 않으면 '자위적 조치' 취할 것이라고 했는데.

"늘 하던 소리이기는 한데, 지금 같은 국면에서는 대남 압박의 근거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태그:#개성공단, #정세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