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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개월은 발가벗겨져 거리로 내몰린 심정이었다. 고단하고도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평소 한국의 언론현실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촛불정국이 한참 달아오르고 조중동에 대해 지면광고 불매를 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을 때도 이 문제를 절박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끝내 2명이 구속 수감되고 22명이 기소돼 재판이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이 싸움에 나섰다.

 

'다시'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2006년 <시사저널> 사태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기자들의 용기와 결단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에서 열혈 회원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때문에 회사와도 마찰

 

조중동 지면광고 불매 운동 재판에 참여하면서 집에 있을 시간이 없어 아내와 많이 다투기도 하고, 이 일 저 일 챙기다 보니 회사와도 마찰이 잦아졌다. 공개경고도 받았다. 하지만 17차례 공판에 매주 불려나가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거나 학교 결석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곡된 언론현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실천한 사람들은 저마다 적잖은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 재판에 참여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상식'과 '진실'은 방관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가볍고 짊어지는 사람에게는 너무 무겁다. 사람들이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공분이 생겨서가 아니다. 광고 목록을 올리고 조중동 광고주에게 전화해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는 것이 윤리적인 경제활동인지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의 법리적 검토를 함께 진행했다.

 

언론에 대한 소비자운동은 헌법 제21조(표현의 자유), 제124조(소비자권리)와 소비자기본법 제4조(소비자의 기본적 권리), 제53조(소비자상담기구의 설치·운영)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합법적인 운동이다.

 

하지만 검찰은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두고 24명을 기소했고 법원마저도 2명의 구속영장을 승인해주는 등 언론운동이 국가기관으로부터 '불법'이라는 딱지를 받게 됐다. 사법적인 판단을 받게 되자 함께 운동을 하던 시민들이 혼란에 빠졌다.

 

일단 광고목록 게재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을 계속할지 다른 방법을 쓸지에 대한 내부 논쟁이 극심했다. 이 과정에서 전 대표가 사퇴하고 비상운영위원회 체제가 약 3개월가량 지속되기도 했다. 좌절감을 느낀 누리꾼과 시민들의 카페 탈퇴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촛불을 들던 시민들도 광고불매운동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아래 언소주) 회원들이 너무 전투적이어서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과 관련해서 검찰의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구속조치 등 험악한 법률 용어가 나오자 우리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우리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수백 번도 더 생각하지만, 몸은 구치소에 갇혀 있고 재판에 매주 끌려다니며 판사와 검사에게 갖은 고초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혹시 내가 무슨 죄를 진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의심이 옆의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고 초심을 자꾸 흐려 놓았다.

 

옳은 행동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언소주 카페 내에서도 광고불매에 대해서 회의를 품는 분도 없지 않았지만, 난 조중동의 일련의 행위들을 보면서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실제 6월 중순 <동아일보>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광고목록 삭제를 공식 요청했으며, 6월 23일에는 <조선일보>가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아예 카페를 폐쇄시켜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만큼 많이 아팠다는 뜻이다.

 

재판 과정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다. <조선일보> 직원이 혹시라도 법정에서 실수를 할까봐 미리 신문사항을 이메일로 검찰에게 전달했고 검찰의 질문지와 <조선일보> 증인의 답변지가 일치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판사에게 이 일이 발각돼 검찰과 <조선일보>는 법정에서 창피를 당했다. (오마이뉴스, 2008.10.30 , <조선> 증인, 법정 '말맞추기' 덜미, 기소 검사와 '예상 질문지'까지 교환)

 

이 내용은 MBC 뉴스데스크에까지 보도됐다. 검찰은 이 건에 대해서 별도의 논평을 내기도 했다. (MBC 뉴스데스크, 2008-11-01, '고전하는 검찰')

 

조중동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11월 18일 검찰에서 증인신청을 한 모 관광회사의 직원과 언소주 회원 사이에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조중동은 이 내용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검찰도 이에 호응해 해당 회원을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협박과 폭력을 가했다는 회원은 의족을 차 발이 불편한 50대 노인이었고 당한 사람은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젊은 청년이었다. 결국 법원은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조중동과 검찰의 이와 같은 과민반응은 오히려 언론소비자운동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재확인시켜주었다.

 

2월 19일 1심 선고... 그들을 생각하면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지난해 8월 30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시민단체 창립총회를 열기 위해 전 회원에 대한 투표(총 참여자 3727명, 찬성 3685명(98.9%), 반대 42명(1.1%))에 이어 총회준비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나는 정책개발팀 실무를 도우며 사업계획서 작업에 참여했다. 언론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생각은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신을 회원들에게 전달했고 공감대를 얻었다.

 

언소주가 광고불매운동이라는 네거티브 캠페인만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언소주는 포지티브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전교조 선생님들과 정론매체 주간지(시사IN, 위클리경향, 한겨레21)와 협약을 맺어 학교에 정론매체 보내주기 운동을 통해 약 60개 학교에 좋은 정론매체를 읽히고 있다. 그리고 정론매체(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 일간지) 배가운동을 하는 '진알시(진실을 알리는 시민)' 등 자발적으로 언론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와 긴밀한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몇 차례 만나는 과정에서 언론운동에 뜻있는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 주었다. 특히 영국과 호주에 사는 교민과 외국인까지 언소주의 일을 돕겠다며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가칭 '영문 번역팀'을 꾸릴 수 있었고 세계 유수의 언론사에 우리의 상황과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통해 우리의 뜻을 전달한 언론사는 아래와 같다.

 

'BBC NEWS Channel, BBC WORLD NEWS (텔레비전), ITN (ITV & 채널4뉴스), SKY (채널5 뉴스), BBC Radio 4, "Today" (시사전문 아침뉴스쇼), BBC Radio 5live (뉴스 & 스포츠전문 라디오채널), LBC 97.3 (런던 뉴스전문 라디오채널), 로이터, AP, AFP, 알자지라, 알자지라 Listening Post (국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유로뉴스 (유럽연합), 프랑스24, 프레스TV (이란), Deutsche Welle (독일), CNN, The Daily Telegraph, The Times, Financial Times, The Guardian, The Observer, The Independent, Daily Mail, Daily Express, 6EN, The Sun, Daily Mirror, Daily Star (Daily Express 계열), Evening Standard, London Lite (Evening Standard 계열), Metro 런던 (Daily Mail, Evening Standard 계열), The London Paper (The Sun & The Times 계열), The Spectator(영국잡지), The Week, Prospect, Prospect, Private Eye, New Statesman, The Liberal, Morning Star, Press Gazette, TIME, NEWSWEEK, le monde, le monde diplomatique.'

 

2월 19일 1심 선고가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다. 최근 법학교수 73인이 언소주 지지 성명서를 낸 데 이어 국회의원, 시민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가 지지의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 예컨대 고려대 박경신 교수의 경우 언소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서 UN에 보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조중동이 검찰의 탄압을 지원하기 위해 2차 불매운동과 관련해 외국의 재판 사례를 보도한 것이 악의적인 왜곡이라며 정정보도 요청에 이은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오마이뉴스, 2009.02.13, 박경신 "언론소비자 재판 잘못되면 자본주의 근간 무너진다">

 

이렇게 눈에 띄는 도움부터 눈에 안 보이는 도움에 이르기까지 언론소비자들의 실천은 힘겹게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보태주면서도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시민들을 볼 때마다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언소주가 창립총회를 열고 나서 지금까지 직을 맡은 회원들은 최소 1주일에 1회씩 만나 평균 5~6시간 이상의 회의를 했고 일주일 중 많은 시간을 언론운동에 매진했다. 이렇게 강행군을 하고 있는 이유를 며칠 동안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언소주가 검찰의 탄압 등으로 무척 힘든 상태에 있을 때 회원 한 분이 했던 말 한마디가 끝내 잊히지 않는다. 이 말만큼 한국 언론운동의 절박성을 표현해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언론운동이 여기서 좌초하면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이런 흐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태그:#언소주, #광고불매운동, #조중동,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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