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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4시께. 종로구 가회동에 사는 전아무개씨가 한 음식점으로 전화를 걸었다.

 

"저는 거기서 음식을 시켜먹던 사람인데요, 혹시 촛불을 상대로 소송내지 않았나요?"

"그런 것에 서명해준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아저씨네 음식점이 떴어요. 어떻게 촛불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나요? 정말 서운해요. 이제 거기서 음식 안 시켜먹을 겁니다."

 

전씨의 거센 항의에 음식점 주인 A씨가 해명에 나섰다.

 

"모르는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동네 잘 되는 일'이라고 해서 서명한 겁니다. 윗집도 아랫집도 서명하길래 '좋은 건가 보다' 생각해서 서명을 해줬어요. 만약 촛불을 상대로 한 소송이었다면 서명을 안 했을 겁니다. 소송을 취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내일 소장을 뽑아서 갈테니까요, 그걸 보고 판단하세요."

 

"촛불을 상대로 소송한다는 얘기는 없었다"

 

전씨는 다음날(30일) 소장을 가지고 A씨의 음식점을 찾아갔다. 이 소장에는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일대 상인 115명이 촛불시위로 영업상 피해를 봤다며 광우병 대책회의 등을 상대로 손배배상(17억여원)을 청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명 '반촛불소송'이다.

 

기자는 전씨와 동행해 A씨를 만났다. 30여년간 음식점을 운영해온 A씨는 '반촛불소송'에 참가한 115명의 상인 중 한명이다. 전씨와 마주한 그는 억울하다는 투로 '반촛불소송'에 참여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보름 전인가 한 아주머니가 왔어요. 40~50대 정도 된 것 같아요. 그 아주머니가 '대표자 이름과 주소·상호를 적어주시면 촛불시위 동안 손해본 것을 정부에서 보상해준다'고 했어요. 정부에서 보상해준다니까 서명을 한 거지요."

 

그런데 서명을 받으러 온 아주머니는 A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그 아주머니는 '반촛불소송'에 서명한 음식점 명단이 적힌 노트를 들고 그를 찾아왔다.

 

"받으러 온 사람이 누군지 모르죠. 자기 소개도 하지 않았어요. 전화번호도 몰라요. 노트를 들고 와서 서명만 하면 보상해준다고 했어요. 소송한다는 얘기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좋은 변호사들이 우리가 그동안 손해본 것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어요."

 

A씨는 소장도 보지 못했다. 그가 "변호사 비용을 내야 하냐"고 묻자, 그 아주머니는 "변호사들이 알아서 다 해준다"고 답했다. 돈도 안 들어가고 보상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서명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현재 반촛불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뉴라이트 성향의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시변)이다. 이 소송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은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근까지 몸담았던 로펌이어서 '청와대 입김' 논란이 일었다.

 

"<동아>는 끊었고 한달 후에는 <조선>도 구독 중단할 생각"

 

A씨는 최근 안양에 사는 한 시민으로부터 항의전화를 받았다. 그 시민이 대뜸 전화를 걸어와 "어떻게 광우병 대책회의에 소송을 걸 수 있느냐"고 따지자 그는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잘못됐다고 생각해 소송단에서 빠질 생각입니다."

 

A씨는 "광우병대책회의 등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처럼 촛불시위로 피해본 상인들이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뜻있는 변호사들이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저는 촛불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들도 촛불집회에 나갔어요. 또 상인협회에서 촛불반대집회에 나오라고 했을 때도 거절했어요. '장사 좀 손해본다고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면 되느냐'고 했어요. 그러니 광우병대책회의 등을 상대로 한 소송인 걸 알았다면 서명하지 않았을 겁니다."

 

촛불시위를 긍정하는 A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귀를 막고 있는 옹고집이에요. 나라 운영을 마치 회사 운영하듯 하고 있어요. 그러면 절대 안되죠."    

 

A씨는 최근 <동아일보>를 끊고, 한달 후에는 <조선일보>마저 구독을 중단할 생각이다. 촛불정국에서 보여준 조중동 보도에 실망이 컸던 탓이다. 그는 "<동아일보> 지국에서 '왜 신문을 끊느냐'고 묻길래 '<동아일보> 보면 손님들이 가게에 안 온다고 한다'고 대답해줬다"고 전했다. 

 

"집에서 TV토론을 즐겨 봐요. 사실 전에는 조중동이 뭔지 몰랐어요. 그런데 조중동의 (광우병과 관련된) 보도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와 지금이 180도 달라졌어요. 언론이 그러면 안되지요. 노무현 정부 때는 언론이 청와대를 맘대로 때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장악해 국민의 알권리를 막으려고 해요."

 

"촛불집회 동안 매출 30% 떨어져"

 

A씨의 음식점은 주로 배달로 매출을 올리는 곳이다. 그래서 촛불시위가 장기화되자 매출이 줄었다. 그는 "촛불집회 동안 약 30% 정도 매출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우리는 광화문까지 배달을 가요. 그런데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에는 오후 5시만 되면 경찰이 막으니까 음식을 안시켜 먹어요. 게다가 사람들이 일찍 집에 가버리죠. 이렇게 저녁시간에 공을 쳐요. 오후 6시부터 저녁 9시까지가 피크타임인데 그렇게 막으니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특히 A씨는 최근 '반촛불소송'에 참여한 상인들의 명단과 연락처 등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협박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상인들은 일부 시민들로부터 협박 수준의 항의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이 걱정되긴 하지만 A씨는 조만간 반촛불소송단에서 빠질 계획이다. 그것이 촛불집회에 나가던 아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태그:#반촛불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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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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