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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의원(재선, 무소속)의 방은 국회 의원회관 615호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의 주역으로, 이 선언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방을 배정받았다.

 

굳을 대로 굳어 있는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해 '김대중의 복심'으로 불리는 박 의원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21일 오전 국회 전경이 훤하게 내다보이는 의원회관 615호에 들어서자 그는 "이 방이 전망은 좋은데 안개가 끼어서 흐릿하다"며 기자를 맞았다. 평소 비유법을 잘 쓰는 그답게 '금강산피격사건'으로, 흐려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갑갑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번 사건을 '우발적인 과잉대응'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그는 "북한 입장에서 판을 깨는 식으로 나올 경우 6자회담에도, 남북관계에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북한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차원에서 북한이 이번 사건에 대해 제1성으로 유감표시를 한 것으로 본다"면서 "유감표명도 한만큼 북한은 조사에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며칠 전 믿을 수 있는 라인 통해 '신참초병이 쐈다'는 말 들어"

 

박 의원은 "북한 17세 신참 여군이 고 박왕자씨를 쐈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며칠 전에 이미 그런 얘기를 상당히 믿을 수 있는 라인을 통해서 들었다"고 전했다. 사건의 우발성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 정부의 '금강산사건-남북관계' 분리대응 기조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도 긍정평가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앞으로도 이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꼭 서울에 (답방)가서 장관선생이 3선, 4선 하도록 돕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던 박 의원에게 "김정일 위원장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통크게'라는 말을 잘 쓴다"면서 "'통크게'하면 잘 해결되리라고 본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북한 스스로를 위해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번 금강산 피격사건에 대한 이 같은 언급들은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측에 보내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늘(21일) 일부 조간에 금강산에서 고 박왕자씨를 쏜 북한 군인은 17세 신참여군이며 북한도 사건에 당황하고 있다는 정보가 보도됐는데.

"나도 며칠 전에 금강산에서 총을 쏜 군인이 신참군인이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들었다. 물론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고.

 

이유야 어떠했던 관광지에서 비록 한계선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식별 가능한 여성에게 조준사격을 한 것은 과잉대응이다. 나도 그런 의미에서 북측이 제 1성으로 유감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본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시험하기 위한 의도적인 도발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 의원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보나.

"그렇다. 북한 입장에서 판을 깨는 식으로 나오면 6자회담도 그렇고, 남북 간에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 북한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북한은 조사에 협력해야 한다. 또 시비를 가리는 것은 조사 후에 할 일 아닌가."

 

- '신참초병'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높게 보는 것 같다.

"며칠 전에 그런 얘기를 상당히 믿을 수 있는 라인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을 듣기 전부터 우발적이지 않나 생각했다.

 

보통 군대에서는 초병들이 '정지, 암호'하고 응하지 않으면 위협사격을 해서 생포를 하는 것 아닌가. 남북 군인이 직접 대치하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 왜 조준 사살을 했을까. 그러니까 의도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우발적인 과잉대응이라고 본다. 조사를 하다보면 한계선을 넘은 그 문제가 나올 테고, 과잉대응 한 것도 나오고, 내용이 다 밝혀지지 않겠나."

 

- 북한은 사건조사를 거부하고 있는데.

"강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명한 정부는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사태파악을 할 때까지는 상호 간에 냉정을 찾는 게 좋다. 저는 대화재개를 위해서 처음부터 외교라인, 특히 미국이나 중국 라인을 가동하고, 적십자사와 현대 그리고 이전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라인도 도와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결이 될 것이라고 본다."

 

"북한도 많은 고민 하고 있을 것"

 

- 우발적 사고라면, 북한으로서도 원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텐데, 문제는 꼬여만 가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선거과정에는 북측에 대해 강하게 말했어도 집권한 뒤에는 남북관계 특수성을  감안해서 잘 대처했어야 했다. 집권 초기 북한에 대한 대응이 상당히 미숙했다. 그러니까 이런 사태가 나도 핫라인도 없어지고, 물밑대화도 없어지고, 이건 상호간에 불행한 일이고 지금 처리 방법도 없다."

 

- 그럼에도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공식·비공식 대화를 통해 진상을 밝힌 뒤 시비를 가리는 것이 북측을 대화의 장에 나오게 하는 방법 아니겠나. 결론을 내놓고 강공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나오라는 식으로는 안 된다. 북측은 자존심이 강한 나라다. 외교는 결국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북한도 많은 고민을 하리라 본다. 북미관계 개선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고, 북일 관계도 진전하고 있다. 지금 정부는 대북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의회 차원의 남북정치회담을 하자'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도 방향을 바꾸는 긍정적 신호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이 적성국교역법 대상에서 배제됐고, 올 8월에는 테러지원국에서도 해제된다. 식량지원 등 국제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이런 사건이 발생하니까 북측도 상당히 고민하고 있다고 본다."

 

-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박 의원처럼 과거 정부에서 대북관련 업무를 맡았던 인사들이 이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길이 있다면 도와야겠죠. 그런데 어디까지나 대북 접촉에 대해서는 정부가 먼저 요구를 해오고, 상의해서 해야지 아무나 나설 수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 나서면 자체를 흐트러지게 하는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육성을 북측에 그대로 전달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내가 (2000년에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 특사로 갔을 때 북측 특사가 내 설명을 계속 들은 뒤 '김대중 대통령 음성을 듣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 순간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 현 정부는 금강산총격사건과 남북관계에 대해 분리대응 기조를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이런 사고를 보고 받고도 이명박 대통령께서 국회연설에서 대화하겠다고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하셨다. 국회연설에서 사건에 대한 애드리브라도 했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것은 이 대통령께서 잘 한 일이라 본다. 마치 독도 문제와 일본에 대한 우호협력 문제는 분리해야 하는 것처럼 남북관계와 금강산 사건도 분리대응해야 한다."

 

- 김대중 대통령은 현재 상황에 대한 언급이 있었나.

"사태 악화가 안 돼야 한다, 물밑대화라도 해서 해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을 하시는 지에 대해 제가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화끈하진 않지만 바뀌어 간다고 느낀다"

 

- 이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회개원 연설에서 6·15선언, 10·4선언 등의 이행방안에 대한 협의 용의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대북정책을 수정하고 있다고 보나.

"뭐, 화끈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점진적으로 바뀌어간다고 느낀다. 그래서 긍정적이다. 그리고 홍준표 원내대표 연설에서 더 진전됐다. 우연히 국회에서 홍준표 원내대표를 만나 연설내용이 좋다고 했더니, 그도 '금강산사건과 남북문제를 분리대응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런 것을 보면 최소한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이에 조율이 있는 것 아니겠나."

 

- 1999년과 2002년 서해교전 때도 지속됐던 금강산관광이 중단돼 있는데.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전 세계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러니까 계속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고 정도이다. 불필요하게 국민감정을 자극해서 악화시킬 필요가 없다. 사실 누구나 애국심이 불타고 반공사상이 있다. 하지만 분리대응 하면서 할 건하고 따질 건 따지는 방법이어야 한다."

 

- 남한과 북한 정부에게 조언을 한다면.

"나는 이 대통령께서 국회에서 연설하신대로, 분리대응 기조가 유지되길 바란다. 북한도 유감을 표명했으면 시비를 없애기 위해서도, 상호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진상조사에 협력을 해야 한다. 어떻게 됐든 관광지에서 관광객이 죽었지 않나."

 

- 남북관계가 좋은 상황이었다면 사건해결도 좀 더 쉬웠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 점도 있겠다. 그러나 사고라고 하는 것은 항상 생길 수가 있다. 알려진 것처럼 신참 초병이 총을 쏜 것이 맞다면 이런 것은 조사하면 다 나올게 아니냐. 그래서 지금은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망원경처럼 멀리 보면서 현미경처럼 자세히 접근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안개가 꼈어도 먼 곳을 내다보면서 자세히 보면 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잘 쓰는 말이 '통크게' 아닌가"

 

-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정일 위원장이나 북한 스스로를 위해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 해결 가능한 부분부터 접근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잘 쓰는 말이 있죠. 통 크게! 통 크게 하면은 잘 해결되리라고 본다. 물론 우리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상호간에 자극적인 이야기보다는 조사해서 진실규명하고 대화 복원해서 따질건 따지고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 큰 틀에 있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

"뭐, 나로써는 불만족스럽다. 6·15 공동선은 남북기본 합의서 등을 기초로 해서 만들고, 남북정상들이 확인한 것 아닌가. 부시 대통령이 6년간 북한에 대해 강격정책을 쓰다가 결국 핵실험까지 나오게 되니까 정책을 바꿨다. 지금 우리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부시 대통령이 실패한 정책으로 바꾼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정책을 바꾸고 있는데, 바뀌는 기간이 7개월 걸렸다. 이렇게 되니까 북측에서도 처음에는 주시를 하다가 지금은 맹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게 만시지탄이지만 이 대통령께서 바꿔 나간다고 한 것, 그 자체가 긍정적이다. 그런 것을  해나가는 게 진짜 실용주의 아닌가."

 

- 개인 얘기를 좀 해보자. 민주당 복당문제는 어떻게 되나.

"민주당이 오늘 첫 당무회의를 한다고 한다. 거기서 당규 확정하고 새로운 당규에 의해서 진행이 된다고 한다. 빨리 복당문제 매듭짓겠다는 말을 직간접으로 듣고 있다."

 

- 18대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생각하고 있나.

"변화된 국회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겠죠.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변화된 것들이 눈에 띈다. 그 부분은 다음에 보자."

 

- 한나라당 의석수에 비하면 민주당은 너무 약한데.

"대개 정치사를 보면 거대여당은 오만과 독선이 심하다. 물론 한나라당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 서슬 퍼런 자유당 시절에도 민주당이 30여석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국민과 함께 하니까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 않았나. 정치라고 하는 것이 꼭 의도대로 되지는 않는다.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 작성은 김정욱·박유미 인턴기자가 도왔습니다.


태그:#박지원, #금강산 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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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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