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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국정이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MB 정부의 핵심 슬로건인 '경제살리기'도 공염불로 끝날 위기에 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7% 경제성장, 4만달러 소득 달성, 7대 경제대국'으로 구성된 747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세계 경제의 후퇴 등 외부 요인과 무리한 경기 부양 정책이 맞물리면서 성장률은 떨어지고 서민 경제의 주름살은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핵심적인 성장 정책으로 내세워온 한반도 대운하와 한미FTA 비준도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는 점에 있다. 이 대통령은 이미 "국민이 반대한다면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한미FTA도 미국 대선 및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의 분위기를 볼 때 연내 비준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더구나 공화당이 대선과 중간선거에서 모두 이기지 않는 한, 내년에도, 후년에도 FTA 비준은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공화당이 두 선거에서 모두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한반도 대운하 및 FTA를 양대 성장동력으로 삼아온 'MB 노믹스'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대운하는 물론이고 한미FTA 조기 비준 역시 국민적인 거부감이 크다는 점에서, 정부가 또 다시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이를 강력히 추진할 경우 국론 분열과 이에 따른 사회 혼란은 불가피해진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들 사업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성난 촛불 민심'이 지나가면 한반도 대운하 카드를 또다시 꺼내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까닭이다.

 

 

북한과 유라시아 대륙을 보라

 

그러나 정부가 눈을 돌려 북한과 대륙을 바라본다면, 활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닐지라도 한국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는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한반도 정세는 '경제와 평화의 선순환'을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조성되고 있다.

 

초읽기에 들어간 영변 냉각탑 폭파 이벤트가 상징하듯, 북미관계는 남북관계의 경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일관계 역시 북한의 요도호 납치범 송환 및 납치 일본인 재조사 입장과 일본의 대북경제제재 부분 해제가 맞물리면서 오랜만에 해빙 무드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수일 내에 미국 의회에 통보될 것으로 보이는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종료는 남북경협을 새로운 궤도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중대한 계기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되어온 개성공단 사업은 미국의 전략물자통제 방침에 따라 크게 지연되거나 제한받아왔다.

 

테러지원국과 적성국 교역법 이외에도 미국에는 여러 가지 대북 경제제재 규정이 있어 완전한 효과를 기대할 순 없지만, 이들 장애물의 제거는 남북경협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지금까지 노동집약적 산업에 머물렀던 개성공단 사업이 전자·전기·기계 등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확대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집약적 산업과 기술집약적 산업의 '동반 성장'은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활성화, 그리고 대기업의 북한 진출을 촉진시킬 수 있는 유력한 산업의 조합이다.

 

더구나 개성공단사업의 확대는 북한 노동력의 추가적인 수요를 발생시켜, 북한 병력의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사업 규모가 확대되면 군인을 산업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남북경협을 통한 군축 효과는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를 크게 줄여 국제신인도 향상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지출하고 있는 막대한 군사비를 경제발전과 복지향상 등보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투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남북경협의 분야는 개성공단 이외에도 많다. 사실상 붕괴된 북한의 사회간접시설을 복구·신설하는 사업은 한반도 대운하 못지않은 건설경기의 호재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미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물길을 통한 물류'보다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철도 건설도 한국경제의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한 '철의 실크로드'이다.

 

러시아의 잉여 전력과 가스를 남북한에 연결하는 사업 역시 에너지 수급 체계의 다변화와 고유가 시대의 대비책으로 일정 부분 기능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서해평화협력지대 및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 지난 정부 때 합의한 사업들도 많이 있다.

 

 

북한에 진출하자! 그런데 한국이 없다!

 

'이명박의 한국'이 주저하는 사이에 중국은 'Buy North Korea'에 여념이 없다. 일본이 최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배경에는 '북한을 경유해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이 일본 경제의 활로'라는 일본 경제계의 요구도 깔려 있다. 이미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북한팀을 구성해 북한으로의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CEO 이명박의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북한 러시'에서 왕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전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존중 의지를 천명하고, 비핵·개방 3000 구상의 명칭을 바꾸고 사업 내용의 일부를 재검토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실 경협을 비롯한 남북관계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거부감은 '김대중-노무현의 10년간 대북정책에 대한 거부감'으로 압축된다.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앞서 '김대중-노무현의 10년을 잃어버린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정책적 유연성을 스스로 내던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안팎의 정세가 제공하고 있는 역사적 기회를 포착하고 진정한 실용주의 정신을 발휘한다면, 한국 경제도 부분적으로 살리고 한반도와 동북아 새판짜기에서 한국이 왕따 당하는 신세는 벗어날 수 있다. 인적 쇄신과 정책 재검토에 대북정책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남북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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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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