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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시우씨는 "국가보안법은 너무 무섭고 두려운 법임을 확인했다"며 "우리 사회가 가진 거대한 관성의 구조와 체계를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3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시우씨는 "국가보안법은 너무 무섭고 두려운 법임을 확인했다"며 "우리 사회가 가진 거대한 관성의 구조와 체계를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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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무죄가 나올지 생각도 못했다."

2월 1일 만난 사진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40)씨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가 어제(1월 31일) 얻어낸 무죄판결은 주위 많은 사람들의 큰 도움이 있었던 터다.

검찰은 "그의 사진은 군사 기밀을 탐지한 것이고, 그의 글은 이적표현물"이라며 징역 10년을 구형했었다. 그조차도 "요 근래에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무죄판결이 없었다"며 옥살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그에게 씌워진 국가보안법 굴레를 벗겨냈다. 아무도 믿지 못한, 그래서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그의 판결이 이례적인 것인 만큼, 아직 국가보안법은 서슬 퍼렇게 살아있다. 2008년 1월에만 1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구속됐다.

그래서 이날 이씨의 '살인 미소'는 유난히 빛났지만, 그의 입에선 국가보안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흘러나왔다. 그를 만난 건 오전 10시 30분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환영 기자회견에서다. 이후 오후 2시까지 그와 함께 하며 그의 말을 기록해나갔다.

"국가보안법은 자기 검열의 문제와 연결"

이시우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청년운동 령도사'. 이러한 '이적표현물'은 검찰이 그를 기소하면서 내세운 증거였다. 이에 대해 이씨는 "국정원에서 대출 받은 것"이라며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시우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청년운동 령도사'. 이러한 '이적표현물'은 검찰이 그를 기소하면서 내세운 증거였다. 이에 대해 이씨는 "국정원에서 대출 받은 것"이라며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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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국가보안법은 너무 무섭고 두려운 법임을 확인했다"며 "우리 사회가 가진 거대한 관성의 구조와 체계를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무죄 판결의 기쁨보다 고민이 더욱 컸던 것일까, 그는 31일 무죄 판결에 대한 환영식을 갖지 않았다. 대신 서울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들머리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화에 반대하며 농성하고 있던 인권단체 회원들과 차갑고 시린 밤을 함께 보냈다.

그의 고민이 이어졌다. 이씨는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앞으로 이런 사진을 찍지 말아야지, 이런 글을 쓰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 드는 게 가장 두렵다"고 전했다.

"제 스스로 자기 검열을 계속 하게 된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창작하는 사람한테 자기검열은 죽음과 같은 거다. 눈으로 보이는 국가보안법 피해는 잘 드러나지만 자기검열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

이씨는 검찰과 경찰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겨눴다. 경찰이 지난해 1월 압수한 이씨의 사진 필름 원판 2000여점이 크게 손상됐기 때문이다. 이씨가 안전하게 보관해달라고 여러차례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현재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문화 예술에 대한 야만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과 검찰이 가진 예술 창작에 대한 태도는 르네상스 때 그림을 불태운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문제는 내가 살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는 심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일심회 조작사건에서 국가보안법 피해자 그룹 내에서 서로 숙청을 가하는 걸 봤다"며 "단순히 국가보안법 폐지를 떠나 '원한 구조'가 해소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에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청년운동 령도사> 등 십수 권의 책을 꺼내보였다. 북한에서 발행된 책이었다. 이러한 '이적표현물'은 검찰이 그를 기소하면서 내세운 증거였다. 이씨는 "국정원에서 대출 받은 것"이라며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일본 자위대 전력표가 우리나라 군사 기밀?"

이씨의 무죄 판결에 이씨와 그의 가족만큼이나 기뻐한 사람은 그의 변호인단이었다. 무죄판결을 이끈 이정희 민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탄탄한 논리와 상식에 기초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우선 검찰의 기소 내용을 살펴보자. 검찰은 이씨가 민통선 지역, 미군 기지를 촬영·메모·스케치한 것과 이를 자신의 홈페이지 등에 게재한 것 등에 대해 "군사상 기밀을 수집·누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것이나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지 않은 장소에서 촬영한 것은 기밀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사진은 군사기밀에 해당되지만 평화운동을 위해 정보를 수집한 것이고 북한을 지원할 목적이 없어 무죄"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기밀의 요건인 비공지성(널리 알려지지 않음)을 인터넷 기반의 정보사회로 변모한 우리 사회 현실에 맞게 판단하는 기준을 세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평화운동을 위한 정보 수집이 헌법상 권리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수사나 기소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검찰은 이씨가 인터넷에 올린 일본 자위대 전력표가 군사기밀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게 우리나라 군사기밀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이는 국방부에서 배포하고 인터넷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또한 "검사는 이씨가 진술을 거부하고 단식한 것을 사건의 중대성을 나태나는 징표로 거론했다"며 "진술거부권이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는 게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국가보안법과 공안수사기구 존속을 위해 수많은 인력과 비용을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1일 오후 1시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김형근 교사 구속 규탄 기자회견'의 모습.
 1일 오후 1시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김형근 교사 구속 규탄 기자회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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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삼보일배...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문제가 돼야"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앞으로 더 바빠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명박 시대'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게 되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미 2008년 1월 한 달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명이나 구속됐다.

지난 1월 2일 새벽엔 류선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이 부산 동아대 정문 앞에서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 또한 지난 29일엔 '통일 교사 모임'을 조직한 전북 군산의 고등학교 교사인 전교조 소속의 김형근씨가 구속됐다.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다.

이에 대해 이날 참석자들은 "항상 국가보안법에 이겨본 적은 없지만, 이씨 사건에서 이긴 것처럼 진다는 것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밝혔다. 이씨 역시 "나의 판결이 다른 사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김형근씨 구속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힘껏 외쳤다. 그리고는 철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삼보일배를 다시 이어가기 위해서다. 그는 말했다.

"국가보안법 문제가 활성화되려면 많은 사람들이 즐겁고 재밌게 참여해야 한다. 삼보일보를 하면서 바닥을 칠 때 영감이 조금씩 떠오른다. 그러한 지혜가 얻어질 수 있길 바란다."


태그:#이시우,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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