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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그만 나라에 두 개의 국가와 두 개의 국민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소통을 이야기하면서도…. 문제는 지금인데,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타닉호 앞에 거대한 빙산이 가로막고 있고, 충돌이 뻔히 보이는데 방향을 바꾸려는 모습이 안 보이는 거죠."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자료사진)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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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도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47·한성대 교수)의 표정은 곧 굳어졌다. 한국경제 상황을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에 비유한 그는 "현재 상황은 사실상 제2의 외환위기"라며 "이미 외국인들이 먼저 배에서 뛰어내리고 있고, 자칫 이대로 가면 배 안의 승객(국민)들은 모두 공멸의 길로 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를 만난 것은 지난 2월 26일 오후였다. 최근 들어 연일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3월 위기설' 등과 맞물리면서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때다. 김 교수와 인터뷰하기 직전에 정부는 긴급 브리핑을 열고, 외환시장 안정 대책을 내놨다.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 좀 더 투자할 수 있도록 세금을 깎아주는 혜택 등이 들어있었다.

그에게 정부 대책을 알려줬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 교수는 곧이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외환시장 불안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실제 정부 발표에도, 다음날인 27일 원-달러 환율은 또 다시 사상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가 가장 크게 폭락한 것이다.

인터뷰는 금융시장 이야기로 시작됐다.

"지금은 제2의 외환위기... 국책은행 외화조달은 한마디로 사기"

- 외환시장이 왜 이렇게 흔들린다고 보나. 정부는 2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두고 문제없다고 하는데.
"(약간 생각하다) 정말 설명하기 어렵다. 외환보유고 자체만 놓고 보거나, 미국과의 통화스와프(통화 교환) 체결과 연장 등으로 외환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 아닌가. 이런 거시적인 차원이 아니라,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 등에 대한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 때문이 아닌가 싶다."

- 동유럽 국가들의 디폴트(국가부도) 가능성 등 국제금융시장 불안도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물론 그렇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한 국내 리스크, 경상수지, 여기에 매일매일 달러에 대한 수급(수요와 공급) 요인 등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보다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우리 (외환)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는 것으로 본다. 이미 경제학자들이 정의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현재 상황은 제2의 외환위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 정부가 방금 전에 외국인이나 재외동포 등의 외화자금이 좀 더 들어올 수 있도록 세금 혜택 등을 발표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외국인이 국채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것인데, 글쎄… 별 효과 없을 것 같다. 요즘 같은 낮은 금리 속에 여러 대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이런 세제혜택으로 투자가 늘지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오히려 이 같은 세제 혜택이 자칫 금융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세금 헤택을 위해 외국인 투자로 위장시켜 돈을 들여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지 않아도, 올 들어 국책은행들이 달러를 들여왔다고 발표했는데, 내용을 알고 보니 국내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은행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다.
"(목소리를 높이며) 어찌 보면 완전히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나 다름없다. 법률적으로 문제없다고 하지만, 한국은행이 미국과 통화스와프 해서 들여온 달러를 받은 국내 금융기관이 다시 국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면서 '돈놀이'하고, (국책) 은행들은 달러들여왔다고 발표하고… 이런 보여주기식 정책 때문에 오히려 시장의 불신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20일 원·달러 환율이 상승폭을 확대하면서 1500원대를 넘겼다.
 지난 2월 20일 원·달러 환율이 상승폭을 확대하면서 1500원대를 넘겼다.
ⓒ 연합뉴스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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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세금 가져다 쓰면서 감시는 안 받겠다고?

자연스레 이야기는 최근에 정부가 잇달아 내놓은 각종 금융위기 대책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달 19일 정부가 내놓은 기업 구조조정 방향과 25일 발표한 '은행 자본확충펀드 조성' 등이다. 김 교수의 평가는 냉혹했다. 잠깐 그의 말을 들어보자.

"시장친화적인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지만, 부실과 우량기업의 구분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채 시장의 불안감만 키우고 있어요. 은행 자본확충펀드 역시 마찬가지예요. 펀드 20조원 가운데 한국은행에서 10조를 내놓고, 산업은행에서 2조원, 나머지 민간에서 8조라고 하지만 대부분 국민연금 등을 동원하는데, 이게 다 사실상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지게 돼 있죠. 한마디로 공적자금이나 다름 없는데, 이것을 감시할 장치가 하나도 없어요."

-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얼마 전에 공적자금은 아니라고 했는데.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처리하는 자산관리공사 산하의 구조조정기금은 국회 동의를 거쳐 정부가 지급 보증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국민의 돈이 들어가는 것인데, 진 위원장은 현재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규정된 '공적자금'이 아니니까 공적자금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정부 스스로 공적자금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은행자본확충펀드도 마찬가지인데, 결국은 기업과 금융기관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새로 만드는 구조조정 기금 등, 이 같은 돈을 아무런 견제장치나 감시 없이 맘대로 쓰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수십조원에 달하는 돈을 정부가 조성하고 쓰면서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일까. 좀 길지만, 김 교수의 말을 그대로 적어본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에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돈을 만들거나, 운용할 때 국회 등의 감시나 견제를 받도록 돼 있어요. 물론 작년에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이 폐지되면서 특별법 자체가 사문화되기도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법은 남아 있어요.

특히 법률 가운데, 최소비용의 원칙(13조)은 정부 등이 공적자금을 최소화해야 할 의무를 담고 있고, 이 원칙에 따라 자금이 지원됐다는 것을 자료를 만들어 보관하도록 돼 있죠. 또 국회에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고(15조) 감사원의 감사도 받도록(16조) 돼 있는데, 지금 정부가 공적자금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도 이런 것을 하나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분명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돈을 빼먹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모럴헤저드도 심각할 겁니다."

지난해 3월 28일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 참석한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지난해 3월 28일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 참석한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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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떠안고 가는 것이 현 정부의 유일한 실업대책"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법을 고쳐야 할 텐데, 국회는 이 부분에 대해 별로 고민이 없는 것 같다.
"(목소리를 높이며) 지금 금산분리 완화 등 이런 법안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일부 여당 의원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우선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부터 처리하고 보자고 하더라. 답답하다. 국회는 지금 정부가 매일 쏟아내는 경기대책도 제대로 검토 못하고 있고, 공적자금 투입에도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 공적자금관리특별법 먼저 고쳐야 하나.
"우선 3월에 예정돼 있는 자산관리공사법 개정 때 '구조조정 기금' 부분에 대해 보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특별법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 법을 대체할 공적자금 관련법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비용 원칙과 공평한 손실부담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담아야 한다."

- 국회 보고나 감사원 감사 등도 들어가고.
"(곧바로)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 정부가 극심한 실업 등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자금을 투입하고,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보면, 기업 구조조정이란 것이 아까도 말했지만, 전혀 옥석 가리기가 되지 않고 있다. 현재 금융위기가 이미 일반 가계 부문부터 자영업자, 중소기업, 대기업 부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는 은행들 팔을 비틀어 가면서, 일단 부도 내지 말고 끌고가라고 하고 있다."

-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아무래도 (정부는) 기업 도산이나 파산으로 인한 실업 문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데.
"(잠시 생각하며) 실업대책은 물론 중요하다. 이것은 별도의 사회안전망 확충 등 따로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실기업을 떠안고 가는 것이 실업대책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이 대책이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실업대책인 것 같다. 이것은 결국 다 같이 죽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사민정 대타협 발표 다음날 신입사원 월급 깎겠다고 발표하는 나라"

인터뷰 시간이 얼추 1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김 교수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인터뷰를 위해 따로 자료를 보지도 않았다. 머리와 마음속에 이미 체화돼 있는 듯했다. 이야기는 실업과 사회적 타협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지난 외환위기 이후 노사정위원회 민간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었다.

- 얼마 전에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민정 사회적 대타협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는데, 어떻게 느꼈나.
"지금 상황에서 노사민정이든, 노사정이든 나서서 잘못 가고 있는 방향을 바꿀 필요는 있다. 무엇보다 노사정간의 합의를 만들 수 있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현재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 어떤 전제조건인가.
"노동자단체든, 사용자단체든, 합의 테이블에 나온 단체가 합의하면 돌아가서 합의 내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리더십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이번에도 민주노총은 불참했고, 한국노총에 가입해 있는 전체 노동자가 얼마나 되나. 또 전경련이나 경총 등에서 합의한다고, 삼성과 엘지그룹 등을 설득하면 따라오는가. 이들 단체나 조직에 그런 리더십이나 조직 체계 자체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

김 교수는 노사정 대타협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정자로서 정부가 노사간에 공평한 모습을 보여줄 때, 노사정간의 신뢰가 쌓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 이명박 정부에선 이 같은 신뢰를 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 "노사민정 합의 선언 다음날, 재계 쪽 임원들이 나서서 신입사원 월급을 깎겠다고 발표하는 나라 아닌가"라며 "곧바로 한국노총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고,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어음이 시장에 나오자마자 부도난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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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경제회복? 최소 3~5년은 걸릴 것"

이야기는 한국경제의 대안으로 옮겨갔다. 그에 앞서 언제쯤 이 같은 경기침체, 실업공포 등 경제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앞섰다. 정부는 빠르면 내년에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물론 그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정부 처지에선 내년에 4% 성장으로 경기가 회복되길 바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요. 우리가 외환위기 때처럼 곧바로 경기가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의 국지적인 현상에다가, 세계 경기가 좋아 수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죠. 지금은 전 세계가 거의 동시에 공황 상태예요. 대내외 환경 자체가 다르죠."

- 언제쯤 경기가 회복될수 있을까.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려놓으며) 최소 3~5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상업은행과 GM 부실과 구조조정 방식, 서유럽 은행권 부실과 동유럽 디폴트 등… 여기에 중국시장의 회복도 봐야 하고… 내년에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은 정말 너무 낙관적이다."

- 올 봄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경기침체에 따른 실물경제 악화가 본격화될 텐데, 이런 위기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나.
"(진지한 모습으로) 현재 진행 중인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그래서 당장은 힘들겠지만,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해고에 따른 실업문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면서 최소화해야 한다. 물론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 현 정부의 성격상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곧바로) 그렇다. 그것이 고민이다. 만약 현재 대내외 상황과 정책 등이 그대로 추진될 경우, 자칫 한국경제는 장기적인 L자형 장기침체로 빠질 가능성도 크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물론 '만약이라는' 가정을 덧붙여서 말이다. "만약 김 교수가 지금 기획재정부장관이라면 무슨 정책을 펴겠느냐"고 말이다. 그는 웃으면서, "쓸데없는 가정"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답했다. 그의 말이다.

"재정과 금융정책을 편다면, 먼저 감세정책 포기를 선언해야지. 그리고 토목사업에 집중된 비용을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돌리는 등 정부 지출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지요.

그리고 한국은행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하죠. 이미 금리 2%까지 내리고, 각종 금융권 지원으로 한은이 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다 했다고 보는 거죠. 지금처럼 재정부의 '남대문출장소' 같은 역할에서 벗어나, 외환시장의 불안정성 등 위기 징후를 먼저 포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태그:#김상조, #금융위기,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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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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