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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25일 DJ와 부시가 처음 통화했다. DJ가 북한을 포용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자 부시는 전화기의 송화구를 막고 "이 자가 누구야. 이렇게 순진하다니 믿을 수 없군.(Who is this guy? I can't believe how naive he is!)"라고 말했다. 나(찰스 프리처드 전 대북 특사)는 '이 자'가 누군인지 심층 보고서를 올렸지만 부시의 DJ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실패한 외교> 94쪽)

 

"로버트 칼린은 지난 2006년 9월 한 모임에서 북한 외무성 강석주 제1부상이 북한 대사들에게 한 말이 담긴 편지를 공개했다. 칼린이 가상으로 만든 편지였지만 모두 처음에는 진짜로 알았다. 나중에 북한 유엔대표부 한성렬 차석대사도 '강석주 부상의 실제 발언과 칼린의 가상 편지가 너무 흡사해서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것으로 의심했다'고 말했다. 이토록 뛰어난 북한 전문가인 칼린도 부시 정부에서는 등용되지 못했다. "(같은 책, 222~223쪽)

 

"내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5년간 근무했지만 누구도 나의 정치적 성향을 묻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나의 정치적 성향이 무엇인지 적어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무당파(independent)라고 진실 그대로 기록했다" (같은 책, 86쪽)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대통령 국가안보 특보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국 선임국장을,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대북 특사 및 케도 미국 대표를 지낸 찰스 잭 프리처드 한국경제연구소(KEI) 소장이 지난해 5월에 쓴 <실패한 외교>(사계절)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왔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와 서보혁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 연구위원이 공동 번역한 이 책에는 부시 정권 지난 6년간 대북 정책의 형성과 전개과정, 미 행정부 내부 분위기, 부시의 대북 정책이 '실패한 외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이 담겨있다. 

 

김 교수는 2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프리처드는 관찰자가 아닌 내부 정책 집행자로 클린턴과 부시 2대 정권에서 대북 정책을 경험했다"며 "이 책은 부시의 무능한 대북 정책이 결국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시켜 '실패한 외교'로 끝났던 전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부시의 '실패한 외교'를 반복하고 있다"며 "도덕 외교의 강조, 북한에 대한 무시, 경험 많은 북한 전문가 배제 등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프리처드는 부시 정권으로부터 '클린턴 사람'이라고 '사상성'을 의심받다가 결국 사표를 내야 했는데 이명박 정부도 대북 경험이 많은 일부 공무원을 마치 '부역자'인양 취급해 속칭 '물먹이기'를 자행하는 행태도 둘 다 비슷하다.  

 

김 교수는 "남한이 북한을 설득할 수 있을 때 미국은 북미 접촉 결과를 한국에게 충실하게 설명해준다, 그래야 한국이 미국 입장을 염두에 두고 북한을 설득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남북채널이 없으면 미국이 한국한테 다 얘기해줄 필요가 없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남한 정부가 받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줄어들고 6자회담 등에서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 책이 지난해 하반기에 번역됐다면 좀 뜬금없을 뻔 했는데 지금은 아주 시의적절하다"며 "역사로부터 배워서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쪽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무튼 뭐니뭐니해도 <실패한 외교>의 미덕은 생생함이다. 예로 맨 앞에 든 몇 가지 인용만해도 그렇다. 이른바 부시가 DJ를 'this man'이라고 불렀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5월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가 'easy man'으로 불러 더욱 대비됐던 사태의 전말이 머릿속에 환하게 그려진다.

 

칼린이 쓴 가상 강석주 편지는 지난 2006년 9월 노틸러스 연구소(www.nautilus.org)에 실렸는데 국내 일부 언론이 사실로 알고 특종(?) 보도했다가 망신을 당했던 일이 있다. 그러나 북한도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았다고 느꼈을 정도였다니 국내 언론이 오보를 낸 것도 수긍이 간다. 

 

'도덕 외교' '북한 무시' 등 닮은꼴

 

다음은 김연철 교수 인터뷰 전문이다.

 

- 이 책의 장점은?

"프리처드는 관찰자가 아닌 '내부자'다. 그는 직접 정책을 집행했고 특히 빌 클린턴에서 조지 부시로 넘어갈 때 백악관에서 근무해 아주 생생하게 미국의 대북 정책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 책을 번역한 역자의 입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우선 2003년 1월 25일 당시 DJ와 부시가 처음 통화할 때 모습이다. 한국이 부시 행정부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면도 있지만 부시 행정부 역시 한국의 생각이나 고민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했다. 부시는 북한도 몰랐을 뿐 아니라 수십년 동맹인 한국도 몰랐던 것이다.

 

이 책은 이른바 북미 사이의 뉴욕채널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프리처드 자신이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뉴욕 채널의 당사자였다. 또 대북 정책 수립과정에서 네오콘과의 갈등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또 지난 2002년 10월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던 제임스 켈리의 방북 과정을 가장 자세하게 썼다. 프리처드는 켈리 방북에 동행했었다."

 

- 김 교수는 부시의 초기 대북 정책의 실패를 이명박 정권이 그대로 답습하고 비판하고 있는데.

"둘 다 비슷한 면이 있다. 우선 도덕 외교다. 부시는 북한은 악이고 악과는 대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기회를 잃고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시켰다. 부시는 이념이나 가치를 중요시하는 외교가 어떻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도 말로는 실용주의, 하는데 실제로는 북한을 바라보는 가정 자체부터 가치 지향적이다. 그러니 현안을 선택할 때 혼선이 발생한다.

 

두번째는 무시다. 결국은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게 부시의 입장이었는데 이명박 정부도 똑같다. 그런 무시 정책은 무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의 연락사무소 제안은 그가 남북 현안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동안 연락사무소가 남북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제안됐는지 알았다면 미국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명박 정부는 연락 사무소 제안을 이전 정부와 구별되는 획기적인 제안으로 생각한다.

"연락사무소는 회담의 형식이다. 지금 과연 남북한 사이에 창구가 없어서 대화를 못할까? 창구는 개성도 있고 판문점도 있고 대통령 특사를 보낼 수도 있다. 문제는 회담의 의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내용이지 형식은 아니다."

 

- 이 책이 지난해 5월 나왔는데 요즘 분위기로 볼 때 번역 출판 시기가 절묘한 것 같다.

"지난해 하반기에 한국에서 번역됐다면 좀 뜬금없는 책이 될 뻔했다. 올 상반기는 아주 시의 적절하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나타났던 상황들이 한국에서 똑같이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이 대통령은 과거 10년 부정은 부시 행정부의 클린턴 부정과 비슷한 것 같다.

"남북관계는 지난 10년만 있는게 아니다. YS는 예외적 존재였고… 박정희 정권 때 7·4 공동성명이 나왔고 전두환 정권의 경우 1984년 북에서 수해 지원물자를 받고 다음 해에 정상회담을 추진했고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 노태우 정권은 북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에 대한 거부감만 있을 뿐 그 이전에 대한민국이 대북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왔는지 그 역사성과 연속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을 비난하면서 왜 김영삼 정부로 가려고 하는가? 노태우 정부도 있고 전두환 정부도 있는데…"

 

"남북관계 악화되면 한국 정부의 정보량부터 줄어든다"

 

- 프리처드는 로버트 칼린과 같은 북한에 정통한 인물도 클린턴 행정부 인물이라는 이유로 부시 정권이 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즉 부시 정권 내부에 북한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북한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다.

"프리처드가 부시 정권의 실패라고 가장 비판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 전문가가 없었다. 여기에 북한을 잘 알지도 못하는 네오콘 성향의 인물들이 과도하게 영향력을 발휘했다."

 

- 프리처드는 한국어판 저자 서문에서 북-시리아 핵 연계설 때문에 2008년에 6자회담 진전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번역자로서의 생각은 어떤가?

"두가지 측면을 다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북미 사이에 실무협상으로 결정된 것이 있고 둘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미 의회나 미 여론이 부시 행정부의 북-시리아 핵 연계 의혹 처리 방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가 문제다. 아마 지난해 하반기에 부시 정부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처리하면서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북-시리아 핵 협력과 관련해 정보 통제를 한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부시 행정부가 의회의 반발이나 여론의 비판을 극복해낼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

 

- 요즘 통미봉남 우려가 많은데.

"한국이 위상을 확보하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은 남북 채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남한 정부가 받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남한이 북한을 설득할 수 있을 때 미국은 북미 접촉 결과를 한국에게 충실하게 설명해준다. 그래야 한국이 미국 입장을 염두에 두고 북한을 설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남북채널이 없으면 미국이 한국한테 다 얘기해줄 필요가 없다.

 

정보의 양이 줄어들면 한국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며 이는 당장 다음 6자회담 때부터 눈에 보일 것이다. "

 

- 이 책의 번역자로서 마지막 꼭 하고 싶은 말은?

"현재 한국을 둘러싼 외교환경을 볼 때 북핵 문제의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아주 중요한 시점인데 역사를 통해서 배워서 실수를 다시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쪽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태그:#북한, #프리처드, #김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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