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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공식 명칭은 '상생공영'이다. 그러나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정부가 보여준 대북정책은 '상쟁공멸'에 가까웠다. 그리고 천안함 침몰 사태에 대한 오늘(24일) 발표 내용을 보면, 남북관계가 상쟁공멸을 향한 '치킨게임'에 돌입한다는 선포와도 같았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사태 관련 대국민 담화'와 외교, 통일, 국방 장관들이 발표한 대북조치는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최고 국군통수권자로서 사과도 없었고, 김태영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에 대한 문책도 없었다. 대통령 스스로가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한반도와 안정과 평화, 한민족의 공동번영"이라고 밝히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정책이나 비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사태의 정확한 진상 규명과 추가적인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해 필요한 남북 합동조사단 구성 등 대화 제의도 일절 없었다.

 

오히려 전반적인 내용은 '외부의 적'을 극대화해 정부와 군당국의 책임을 최소화하고, 북한의 추가적인 강경 조치가 충분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강경한 입장과 대처를 천명해, 북한의 반발을 유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든다. 이를 통해 국내적으로는 6·2지방선거에 '북풍' 효과를 극대화하고,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북한 급변 사태 유도를 본격 추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강경, 강경, 또 강경

 

이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을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이라고 규정하면서 발표한 "단호한 조처"는 크게 여섯 가지이다.

 

첫째는 북한 선박의 남한 해상교통로 이용 불허이고, 둘째 일부 인도적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을 제외한 남북 간 교역과 교류의 중단이며, 셋째는 영유아 지원은 유지하고 개성공단 문제도 검토하며, 넷째는 "적극적 억제원칙"하에 북한의 남한 영해, 영공, 영토 무력침범시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며, 다섯째 북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추진할 것이고, 여섯째 한미동맹을 비롯한 안보태세와 군 전력의 획기적 강화 등 군사적 조치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사과와 사건 관련자들의 즉각 처벌을 북한에 요구했다.

 

군사적 조치와 관련해 김태영 국방장관은 ▲ 대북 심리전 재개 ▲ 북한 선박의 남한 해역 진입시 강제 퇴거나 나포 조치 ▲ 한미 연합 대잠수함 훈련 실시 ▲ 남한 해군 주관하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PSI) 훈련 역내 실시 등 강경 정책을 발표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역시 ▲ 남북교역  중단 ▲ 남한 국민의 방북 및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 대북지원 사업 보류 등을 발표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탄과 제재 동참을 위해 적극적인 외교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강경, 강경, 또 강경'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번 참사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또한 20일 합조단의 발표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에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해명이나 추가적인 설명, 그리고 정보 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 스스로 사활적 국익이라고 말해왔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와 같은 위기관리와 평화구축에 필요한 정책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 정부의 이러한 폐쇄적이고 일방적이며 위기초래형 행태로는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도 안심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조사 결과와 대응조치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샴쌍둥이와 같은 남북관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의 이번 발표가 북한의 강력한 대응을 초래해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위험 상태로 내몰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정부와 군이 내놓은 군사적 조치들은 하나같이 남북한의 불신과 군비경쟁, 그리고 군사적 준비태세의 강화를 가져와 안보 딜레마를 심화시키고, 우발적 무력 충돌 및 충돌 발생시 확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우발적 충돌의 배경 가운데 하나인 꽃게잡이철이 다가오고, 남북한 모두 공세적으로 교전규칙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충돌 발생시 확전도 불사한다는 태도여서 서해 일대의 긴장고조가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남북관계의 사실상 전면 중단 조치는 북한의 개성공단 유출입 차단과 같은 보복 조치를 야기할 공산이 크다. 이는 개성공단의 운명을 풍전등화로 몰아넣어 남측 기업의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남측 국민이 대규모로 억류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우리 국민의 신변에 위해를 가한다면 이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과연 대규모 억류 사태 발생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의 안전 문제는 예방이 최선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북한에게 떠넘기는 듯한 언행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올 하반기 한반도 역내에서 실시를 추진하고 있는 PSI 훈련은 이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하고 있는 북한과의 정면충돌 우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또한 북한 선박이 남한 해역에 진입하면 강제 퇴거나 나포를 시도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민간 상선과 남한 해군 사이의 충돌 장면을 연출할 수 있고, 이는 국내외 여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자아낸다.

 

정부는 오늘 발표한 대응조치를 통해 북한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남북교역이 중단되면 북한도 피해를 입지만 남한도 피해를 입게 된다. 군사적 준비태세 강화로 긴장이 고조되고 무력 충돌까지 발생하면 그 피해 역시 크던 작던 남북한 모두가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 유엔 안보리 회부를 통한 대북 제재도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다.

 

정부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남북한은 '샴쌍둥이'와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한쪽이 아프면 다른 쪽도 아프고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무사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정부의 대북 보복과 응징 조치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도 아프게 한다. 특히 그 고통의 크기는 아래로 흘러갈수록 더욱 커지는 법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상쟁공멸'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출구없는 대북강경책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의 출발점이다.


태그:#천안함,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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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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