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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9시, 2차 총궐기를 준비하기 위해 알바노조 사무실에 갔습니다. 저는 알바노조 조합원입니다.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주차장을 오고가는 중 계속 시동을 건 채 같은 곳에 서있는 흰색 카니발이 눈에 띄었습니다.

차에 타고 있는 두 명의 남성은 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핸드폰을 들고 얼굴을 가렸습니다. 저는 한 번도 사복경찰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들이 사복경찰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집회를 준비하는 조합원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것을 보고, 한 조합원이 창문을 두드리며 신원을 확인하려 하자, 그 차는 빠르게 도망쳐 버렸습니다.

같이 사는 친구가 집 앞에서 잡혀갔습니다

지난 8일 체포된 조합원이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있다.
 지난 8일 체포된 조합원이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있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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찝찝한 기분을 뒤로 하고, 준비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경찰청으로 갔습니다. 기자회견의 제목은 '경찰의 조직적 인권침해 규탄'이었는데,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이후 출석요구서를 남발하고 참가자들의 집으로 찾아가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는 경찰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의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하는 도중 저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이혜정 알바노조 비상대책위원장(아래 이혜정 비대위원장)이 집 앞에서 체포되었다는 전화였습니다. 급히 기자회견을 마무리 짓고, 모여 있던 조합원들과 기자들까지 함께 마포경찰서로 갔습니다.

이동하면서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혜정 비대위원장은 저와 동거를 하는 사이이기도 한데요, 같이 사는 집 앞에서 동거인이 잡혀갔다는 사실이 너무 소름끼치고 두려웠습니다. 아침에 왔던 사복경찰들도 이혜정 비대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서 왔던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마포경찰서에서 확인한 이혜정 비대위원장의 혐의는 일반교통방해와 지난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공모였습니다. 체포될 때 '폭력시위'의 증거물로 '마스크'와 '알바노조 조끼', 그리고 갖고 있던 휴대폰까지 압수됐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마스크와 알바노조 조끼가 폭력시위의 증거물이 될 수 있는지 황당했습니다.

지난 5일 오후 8시, 5만여 명이 참여한 2차 민중총궐기는 평화롭게 끝났지만, 알바노조와 저는 불안했습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서울대병원까지 행진하는 내내 조합원들은 검찰이 이혜정 비대위원장 영장을 청구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전체집회가 마무리되자마자, 몇몇 사람들이 급히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변호사와 연락하고, 면회를 공지하고, 구속영장을 대비한 탄원서까지 미리 작성해 놓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늦은 밤까지 비대위원장을 석방을 요구하는 문화제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끝났음에도 쉽사리 집으로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이튿날은 문화제를 열고 면회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문화제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며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구속영장이 떨어지는 것을 대비하는 것도 있었지만, 겨우 500명 남짓한 노동조합의 대표가 체포되면서 온몸으로 느꼈을 공권력의 공포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일 오전 9시 10분, 핸드폰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이혜정 비대위원장이 석방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체포 소식이... 벌써 4명째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2차 민중총궐기 촛불문화제에서 지난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의 딸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발언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힘내라"고 외치며 응원하고 있다.
▲ "백남기씨 딸, 힘내라"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2차 민중총궐기 촛불문화제에서 지난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의 딸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발언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힘내라"고 외치며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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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중에도 또 한 명의 조합원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근래에만 4번째 체포 소식입니다. 이 조합원은 민중총궐기 건으로 조사를 받으러갔다가 30분 내로 벌금을 130만 원 내지 않으면 체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용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신분이기에 130만 원의 벌금을 30분 내로 낼 수 없었고, 결국 포승줄에 묶여 수갑까지 채워진 채로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제 저희 같은 힘없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향한 겁박이 계속됩니다. 잡아가고, 벌금형을 선고하는 세상입니다. 심지어는 집회에 참가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도 출석요구서를 남발합니다. 피해를 보지 않는 수준에서 적당히 물러서라고 이야기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는 괜찮다고 호언장담해왔지만, 최근 들어 조금 두렵습니다. 며칠 전 집에 경찰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두려웠는데, 함께 사는 이혜정 비대위원장이 집 앞에서 체포되고 나니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더욱 무섭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알바 노동자들의 일상이 평화롭지 못한 상황에서 알바노조가 '적당히' 싸울 수는 없습니다. 알바노조로 모입시다! 알바노조와 함께 알바들이 권력을 잡고, 더 이상 탄압받지 않는 세상이 될 때까지 함께 열심히 싸웁시다.

그래서 더 이상 제 친구들이 잡혀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알바노조 조합원입니다.
알바노조 http://www.alba.or.kr 02-3144-0935
알바하다 궁금하면? 알바상담소 http://cafe.naver.com/talkalba



태그:#알바노조, #민중총궐기, #공안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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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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