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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아픔은 2004년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한전 이사회에서 의결함으로써 시작된다
 밀양의 아픔은 2004년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한전 이사회에서 의결함으로써 시작된다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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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0일,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할매들이 상반신을 벗고 인분을 투척하며 공사 저지를 위해 투쟁하다 병원에 실려 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2013년 5월 22일 새벽, 나는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로 향했다. 88번과 89번 현장으로 가는 모든 길은 경찰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다.

나는 경찰의 봉쇄망을 뚫고 새벽 5시께 89번 현장에 도착했다. 10명도 채 되지 않는 할매들은 삽차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경찰은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미 몇 분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여명이 밝아오는 시각까지 대치는 계속되었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은 2012년 1월 16일 이아무개 어르신의 분신으로 전환을 맞게 된다. 지금도 산외면 보라교를 지나 보라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고 이아무개 어르신의 분신 자국을 선명히 볼 수 있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은 2012년 1월 16일 이아무개 어르신의 분신으로 전환을 맞게 된다. 지금도 산외면 보라교를 지나 보라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고 이아무개 어르신의 분신 자국을 선명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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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르는 할매의 안내를 받으며 88번 현장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길을 20~30분 동안 올랐을까. 산꼭대기에는 공사용 삽차가 있었고, 그 주변을 경찰 병력이 둘러싸고 있었다. 다수의 한전 직원들은 산 위의 그늘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10여 명의 밀양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30여 분 동안 대치가 이어졌고 한전 인부가 삽차로 다가가 기름을 부으려고 하자 할매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어느 분은 삽차의 삽 위에 걸터앉았고, 서너 명은 삽차 밑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찰도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삽차 밑으로 들어간 어르신들은 밧줄로 삽차에 자신의 몸을 묶었다.

경찰과 한전 직원들은 강제로 삽차와 할매들을 떼어내려고 했다. 경찰은 삽차와 할매들을 엮어 놓은 밧줄을 끊기 위해 그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커터 칼을 사용하기도 했다. 두 시간여 동안 상황이 계속되었고, 할매들은 몸부림치며 저항하다 삽차에 머리를 부딪쳐 다치기도 했다.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할매들을 끊임없이 헬기로 이송했다. 국가인권위 소속의 위원들은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2013년 5월 22일, 88번 현장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삽차 삽 위에 앉아 저항하고 있는 밀양 주민의 모습
 2013년 5월 22일, 88번 현장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삽차 삽 위에 앉아 저항하고 있는 밀양 주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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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2일, 부북면 127번 현장에서 한전 직원들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밀양 주민의 모습
 2013년 5월 22일, 부북면 127번 현장에서 한전 직원들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밀양 주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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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번 현장이 어느 정도 수습되는 것을 보고 나는 부북면으로 향했다. 부북면 위양마을 입구 장동 움막 앞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나와 계셨다. 127번 현장에 할매들이 계셨는데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채 뙤약볕에 놓여 있다는 처참한 소식이었다.

우리는 1톤 트럭에 물과 과일 등을 싣고 127번 현장으로 달렸다. 마침 경찰과 한전 직원들은 그늘막 아래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우리는 주저 없이 그들의 제지를 뚫고 할매들이 계시는 곳까지 치고 올라갔다. 할매들은 30도 가까운 한낮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삽차의 그늘에 의지해 앉아 있었는데, 마실 물 한 방울도 없었다. 힘없는 여덟 명의 할매들을 막기 위해 모인 한전 직원과 경찰은 족히 200명은 넘어 보였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삽차가 이동하고 헬기를 떴다. 할매 한 분에게 경찰과 한전 직원들 수십 명이 달라붙었다. 할매들은 상반신을 벗고, 인분을 던지며 저항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참혹한 전쟁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경찰과 한전 직원들은 할매들에게 담요와 공사용 포대기를 덮어씌웠고, 사지를 들어 공사 현장 밖으로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호흡곤란 등 부상을 당한 할매들은 119 구급차로 실려 갔다. 밀양 어르신들의 눈물과 분노의 울부짖음이 화악산에 메아리쳤다. 지옥 같은 하루였다.

그날 촬영한 사진들이 SNS를 타고 흘렀다. 밀양으로 향하는 탈핵희망버스가 조직되었고, 국제 엠네스티와 UN 인권위에서 밀양의 인권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결국 정부는 40일 간의 전문가협의체 구성을 제안했고, 765kV 송전탑 공사는 중단됐다. 

2013년 10월 공사가 재개되자 126번 현장에서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이 공사 저지를 위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2013년 10월 공사가 재개되자 126번 현장에서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이 공사 저지를 위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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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0월 1일, 공사가 재개됐다. 정부의 태도가 전적으로 달라졌다. 이전에는 최소한 공권력은 형식적 중립을 취했다. 공사가 재개된 10월 이후부터는 한전은 뒤로 빠지고, 공권력이 전면에 나섰다. 765kV 송전탑 공사를 위한 분쟁 지역에는 대규모 경찰 병력이 동원되어 주민들의 출입을 원천봉쇄 했다. 한전은 경찰의 적극적 보호 아래 공사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밀양 주민들과 연대하러 온 시민들이 부상을 당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구금당하고 조사를 받아야 했다. 현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그때 상동면 고정마을 고 유한숙 어르신이 음독자살 하였고, 단장면 주민이 음독자살을 시도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시민단체는 탈핵희망버스 등으로 연대했다.

밀양 765kV 송전탑건설반대대책위 김준한 신부가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에게 헬기 소음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밀양 765kV 송전탑건설반대대책위 김준한 신부가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에게 헬기 소음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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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청은 공사 재개 이후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에 연인원 38만 명이 넘는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하고 100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사용했다고 한다
 경남경찰청은 공사 재개 이후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에 연인원 38만 명이 넘는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하고 100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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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과 밀양시청은 2014년 5월, 마지막으로 남은 부북면과 상동면 그리고 단장면의 127번·129번·115번·101번·위양마을 장동 농성장 움막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계고하면서 밀양의 긴장은 최고조로 달했다. 최종적으로 계고한 6월 11일이 다가왔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10년을 싸워온 갈등이 '6·11행정대집행'으로 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행정대집행은 잔인했다. 세 곳의 농성장에 있는 네 개의 움막을 철거하는 데 2천 명이 넘는 경찰 병력과 공무원들 그리고 한전 직원들이 동원됐다. 6월 10일 밤, 화악산에서 바라본 부북면의 야경은 끝이 없는 경찰 차량들로 장관을 이뤘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힘없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국가가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국가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밀양시청이 해야 할 행정대집행을 경찰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경찰과 공무원 그리고 한전 직원들은 대형 커터기와 날카로운 커터칼을 동원해서 농성장 움막의 철거를 시도했다. 또한 주민들이 쇠줄과 밧줄로 몸을 묶고 목을 감고 저항했지만,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고려 없이 대형 커터기를 동원해서 줄을 잘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과 연대하러 온 시민들이 구급차와 헬기로 실려갔다. 밀양 주민들과 함께 한 성직자와 수도자(수녀)들이 공권력의 폭력 속에 사지가 들려 나왔고, 수녀들은 속옷이 드러나는 치욕과 함께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지옥 같은 아비규환 속에 행정대집행은 하루 만에 완료되었다. 

대규모 경찰 병력에 의해 집행된 '6·11행정대집행'으로 수많은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 그리고 수도자들이 부상당했다
 대규모 경찰 병력에 의해 집행된 '6·11행정대집행'으로 수많은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 그리고 수도자들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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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경찰 병력에 의해 집행된 '6·11행정대집행'으로 수많은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 그리고 수도자들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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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경찰 병력에 의해 집행된 '6·11행정대집행'으로 수많은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 그리고 수도자들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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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경찰 병력에 의해 집행된 '6·11행정대집행'으로 수많은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 그리고 수도자들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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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어르신들의 투쟁은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이 싸움이 외부에 알려지기 전까지 밀양 어르신들은 깊은 산 속에서 고립된 채 싸웠다. 때로는 대형 전기톱에 몸을 던지다가 부상을 당하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보상을 바라고 저러는 것'이라는 왜곡된 시선 속에서도 밀양 어르신들은 일관되게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품고 싸웠다.

밀양 어르신들의 외로운 10년 투쟁 속에서 두 분은 생명을 잃었고 수많은 주민들이 다쳤지만, 밀양 어르신들의 정신은 한국의 에너지정책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저비용·고효율'이라는 자본의 시각으로 에너지 문제에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태를 겪으면서도 설계 수명을 다한 고리핵발전소 1호기와 월성핵발전소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는 이 나라 정부를 향해 '대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6·11행정대집행' 이후 밀양 어르신들은 경찰청과 한전 본사 앞에서 상경투쟁을 벌였다. 또한 국회에서 경찰의 폭력을 증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밀양 현장에 7개의 농성장을 새로 설치했다. 밀양 어르신들은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우리는 결코 지지 않았다"라며 다시 싸움을 시작할 것을 선언했다. 바로 "밀양송전탑 시즌2"이다.

밀양 어르신들은 손을 잡아주는 시민들이 있기에, 잡은 손 결코 놓지 않겠다는 그들이 있기에 헬기가 뜨고 경찰이 막더라도 산을 오른다. 밀양 어르신들은 생명의 땅과 어머니와 같은 고향을 살리고 지켜내며 우리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 오늘도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밀양 주민들은 '6·11행정대집행'에도 불구하고 '쫄지 않고'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밀양송전탑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6·11행정대집행'에도 불구하고 '쫄지 않고'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밀양송전탑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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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밀양송전탑, #송전탑, #밀양할매, #행정대집행, #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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