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를 정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금융 제재가 발표되고 러시아가 핵 위협 카드를 꺼내면서 러시아 화폐 가치가 30% 가까이 폭락했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역외 시장에서 1달러당 루블화 환율은 장중 117.817루블을 기록하며 전 거래일 종가 대비 약 28% 하락했다. 미국과 유럽은 전날 러시아 중앙은행을 제재하고 일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기로 합의했다. 2022.2.28
연합뉴스
그러는 동안 서방세계는 강박적으로 소비에트 경제 해체만 기다렸다. 러시아의 건전한 자본주의 세계 합류에는 관심이 없었다. 푸틴 체제의 러시아가 유럽행을 포기하고 독자적 세력을 만들어가는 데 서방세계의 책임이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이것이 서방세계 '동진정책'의 두 번째 축인 경제적 차원에서의 오류에 해당한다. 서유럽의 경제적 팽창주의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을 늘리는 방향으로 귀결되지만 푸틴의 러시아에 위기감을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심각한 안보 위협을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서방세계 '동진정책'의 세 번째 축은 정치적 차원으로 자유 민주주의 전파가 이에 해당한다. 군사적, 경제적 팽창정책이 나토와 유럽연합이라는 구체적 조직을 통해 이뤄졌다면 정치적 차원의 민주주의 이식은 다소 추상적 이념의 문제에 해당한다. 그리고 추상적 이념의 문제는 자칫 착시 효과를 일으키며 상대국에 위화감을 주기도 한다.
미국의 적성 국가들 또는 라이벌 국가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설교가 국가 전복의 도구로 사용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이데올로그들은 친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데 소홀히 한다. 또는 실제 그들도 그렇게 믿는 듯하다.
그런 시각이 굳어지면 실질적 민주주의 이식 여부와 관계없이 친미 체제가 들어서는 것이 곧 민주주의라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친미 또는 친서방(親西方) 정책이 반드시 민주주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은 남아메리카의 많은 국가에서도 확인된다.
옐친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도 무시하고 심지에 탱크를 동원해 국회의사당에 포격을 가할 때도 소비에트 제거라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이 온갖 부패와 부당한 혜택 속에서 국가의 이익을 좀먹을 때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러시아 국민들은 친미 또는 친서방이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으며 과거 소비에트 대제국 시대(그들에게 이념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의 영광이 그리울 뿐이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에게 푸틴이라는 이름은 그 영광을 재현해줄 영웅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서방세계의 서툰 팽창정책들은 러시아의 재활을 도와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들의 심각한 위협으로 다시 맞이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 영웅 신화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팽창주의가 하필 우크라이나에서 충돌한 이유는 물론 지정학적 이유가 꼽힌다. (앞선 기사
<끔찍한 패륜, 푸틴식 '하이브리드 전쟁'의 처참함> (http://omn.kr/1wad7) 참조) 서쪽으로는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민족적으로도 서쪽은 서슬라브족, 동쪽은 동슬라브족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국가에는 특히 정치적, 외교적 신중함이 필요하며 그것은 국가의 명운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과거 야누코비치 대통령 당시의 급진적 친러 성향이 대규모 국민 저항을 야기했듯이, 현재의 젤렌스키 대통령의 위험하리만큼 급진적인 친서방 태도는 러시아의 침공을 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