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7 12:01최종 업데이트 24.05.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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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가자 전쟁 반대' 시위가 열린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캠퍼스 교정 잔디밭에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 국기가 꽂혀 있다. ⓒ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행동에 반대하는 미국 대학가의 시위가 수 주째 이어지고 있다. 동부의 명문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시작해 80개 이상의 전국 대학으로 번진 반전 운동은 급기야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근본적 논쟁으로까지 확산 중이다. 여야의 대립은 물론 집권 민주당 내부의 분열 조짐도 보인다.

공화당 강경파는 학생들의 집단행동에 주 방위군 투입 필요성까지 거론한다. 학생 진압에 군을 투입하자는 논리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에 해당하는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지난달 24일 컬럼비아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시위가 진압되지 않을 경우 주 방위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백악관은 평화적 시위를 존중한다는 원론적 입장이다. 존 페터먼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모든 시위에 반유대주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코네티컷)은 '이스라엘의 근본적 불의' 때문에 발생한 일로 시위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맞선다.

전반적인 미국 정치권은 현재의 학원 사태가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대선을 앞두고 이민자, 기후변화, 낙태 등 국내 사회적 문제들에서 중동을 둘러싼 미국의 대외정책 문제로 주요 쟁점이 급히 이동 중이다. 현재와 같은 양 후보 간 박빙 구도에서 충분히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 수 있는 큰 이슈가 등장한 셈이다.

갈등은 흔히 본질을 가린다. 전쟁이라는 극단의 순간에는 더더욱 그렇다. 첨예한 정책적 대립에 선거를 코앞에 둔 정파 간 경쟁이 맞물려 미국 사회가 판단력을 잃고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20세기 초 지구를 뒤흔들었던 유대민족을 둘러싼 서구 세계의 악몽이 여전히 그들의 머리 위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반전 시위에 혼재된 목소리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에서 동료 의원들과 함께 미국 대학 캠퍼스 내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대학을 휩쓸고 있는 반전 시위 안에는 크게 세 부류의 목소리가 혼재돼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주류 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다. 그러한 우려는 이미 지난해 10월 하마스에 의한 키부츠 기습공격 직후부터, 더 길게는 인류의 문명사와 함께 서구 사회에 존재해 왔다.

기독교가 서구의 정신을 지배하면서 더 불거지기 시작한 유대인에 대한 무조건적 편견이 그 핵심이다. 개종을 거부하고 전 세계로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이단자들로 낙인찍혀 재산 소유도 직업도 자유롭게 가지지 못한 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타적 공동체를 구성하며 살아왔다.

그들이 재무에 밝다는 선입견도 만약 그것이 맞다면 상업을 천시하는 근대 이전 유럽의 풍속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금융, 학문 등으로 극히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천 년이 넘는 박해의 시기를 거친 그들은 20세기 초 광란의 민족주의 흐름 앞에서 또 한 번 말할 수 없는 통한의 고통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문명 인류가 남긴 치욕의 역사 가운데 하나인 홀로코스트는 단죄됐지만 그들을 향한 편견은 소거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사회 혼란만 벌어지면 이들을 향한 맹목적 비난, 심지어 물리적 폭력까지 이어진다. 현재 미국 대학 내 번지고 있는 시위 안에는 분명 이러한 반유대주의의 얼굴이 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정당하다.

반면 이와 유사해 보이지만 혼동해서는 안 되는 목소리들도 미국과 유럽 대학가 시위 현장에 혼재돼 있다. 반시온주의(Anti-Zionism)가 그것이다. 시온주의란 19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믿음을 말한다.

유대인 국가 건설이라는 담대한 계획에는 수 세기에 걸쳐 그들에게 행해진 서구 사회의 집단 따돌림이 크게 작용했다. 배타적 유대관계 속에서 지적, 경제적 반석이 갖춰진 그들은 19세기에 이르러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때마침 1차세계대전 후 혼란한 국제질서를 틈타 무주공산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그들의 국가를 세울 천금의 기회를 얻게 된다. (관련 기사 : 민간인 고의적 학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진짜 이유 https://omn.kr/25ybz

시온주의의 문제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땅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연적 숙명에서 시작된다. 이미 팔레스타인 땅에는 수천 년에 걸쳐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아랍인 등 수많은 민족이 공생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건설을 위한 이들의 노력은 결국 현지 원주민들과의 협력, 갈등, 분쟁 중 적어도 하나는 거쳐야 했다.

시온주의자 중에는 유대인이 아닌 경우도 있다. 반대로 모든 유대인이 시온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시온주의적 국가관에도 온건주의가 있지만 팽창주의, 패권주의 또한 상존한다. 후자가 시온주의의 주류가 된 것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로, 현재의 이스라엘 다수파가 그들이다.

친이스라엘 vs. 친팔레스타인 갈라치기의 위험성
 

지난 2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경찰이 친팔레스타인 텐트촌 주변의 바리케이드를 제거하고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체포했다. ⓒ 연합뉴스

 
팽창주의자들은 점차 그들의 땅을 넓혀왔으며 궁극적으로 현재의 이스라엘 국경선을 넘어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자신들의 영지로 삼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될 때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문제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이다. 이들을 내쫓거나 문화적 또는 물리적 궤멸을 꾀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시온주의란 이러한 이스라엘의 팽창주의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말한다. 따라서 유대인 가운데도 반시온주의자가 있고, 현재 서구 대학가 시위 현장에 유대인 출신 학생들도 등장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들이 시위 현장에서 반유대주의자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반대파들에게는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팽창적 시온주의는 필연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과 연결돼 있다. 국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서러움은 누구보다 유대인들이 잘 알 듯하다. 그런데 그들이 국가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누구보다 탄압하고 있다. 중동의 평화를 이야기할 때도 유대교, 수니파, 시아파의 권익만 있었지 팔레스타인의 권익이 설 자리는 없었다.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목소리가 친팔레스타인주의(Pro-palestinian)다. 물론 이들 가운데에는 반시온주의자들도 다수 섞여 있고, 심지어 반유대주의 목소리도 섞여 있다. 이들의 복잡한 양상들이 국제질서라는 힘의 논리 앞에 단순화되면서 반유대주의로 매도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학가 소요사태를 보도하는 대부분의 국내외 언론이 친이스라엘 vs. 친팔레스타인 구도로 대비시키는 갈라치기는 그래서 잘못된 것이다. 유대인이 국가가 필요하다면 팔레스타인인들도 국가가 필요하다. 학생운동을 '이스라엘이냐 팔레스타인이냐'의 흑백논리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못할 뿐 아니라 사실관계도 잘못됐다.  

인간계의 정의는 상대적이다. 국제질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국제질서에도 법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국제법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법은 필연적으로 자의적이고 강자와 다수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래서 법의 허점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몫이다.

모든 이들에 똑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만민법(Jus gentium)을 정복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소통법(Jus communicandi)으로 대체한 후 행해지는 스페인의 '합법적' 정복사를 인류는 기억하고 있다. 그 '합법적' 확장은 미국의 서부개척사에서도 이어졌고,이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강요되고 있다. 언론도 제 역할을 못 할 때 시민은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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