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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라는 말은 이제 웬만하면 이해할 만한 미술 사조가 아닐까. 아니, 미술 사조는 몰라도 고흐, 고갱, 세잔 등의 그림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인상주의(impressionism)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두된 문화적 사조이다. 우리가 아는 미술적 부분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문학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뻗어나갔다. 

별빛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거리를 표현한 고흐, 햇빛이 비친 풍경을 묘사한 모네, 빛에 의해 색감이 제각각인 세잔의 정물화를 보면 인상주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바로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 빛 등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세계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기에 인상주의를 '추상 미술'의 시원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 마이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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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인상주의가 지역을 옮긴다면 어떨까? 고흐가 자신의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썼듯이 남프랑스의 빛을 잔뜩 머금은 풍경이 스산한 북유럽으로 옮겨진다면? 그 답은 오는 8월 25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여는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북유럽으로 간 인상주의 
 
스웨덴에서는 해를 그리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없어요. 
공기는 맑지만 해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19세기말 북유럽 미술은 역사화와 풍속화만을 고집했었다. 이에 젊은 화가들은 보수적은 기존 예술계에 반발하여 프랑스로 떠났고 그곳에서 인상주의를 만났다. 하지만 위의 문구에서 보듯이 프랑스와 스웨덴은 풍광 자체가 달랐다. 고국에 돌아온 이들의 인상주의는 프랑스와 같은 화사한 햇빛을 가득 머금은 그림이 아니라, 이른바 '북유럽의 빛'이라 칭해지는 회색빛이 감도는 북유럽 특유의 정서를 살려내고자 했다. 또한 북유럽에서 친숙한 눈이 내린 풍경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 마이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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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분명 빛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그림들임에도 이들의 작품은 한 마디로 딱 '북유럽'이었다. 화면의 반을 넘게 차지한 하늘은 하늘빛이라기엔 빛을 잃었고 바다 또한 푸르다기엔 무색했다. 하지만 흐린 날의 풍광이라고 해서 빛이 없는 건 아니다. 혹시 은빛으로 덧칠을 한 거야 하고 다가서서 확인을 할 만큼 그 북유럽의 흐린 햇살을 품은 풍광은 저마다의 매력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화사한 남프랑스의 햇살과 달리, 여긴 북유럽이야라고 주장하는 산과 바다, 눈 쌓인 곳곳이 은은하게 빛난다. 여름에 작열하는 햇살의 뜨거움은 아닐지라도 겨울의 햇살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으랴. 북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바로 그 '소중한 햇살' 속에 드리워진 자기 고국의 풍경을 자신들만의 색채로 한껏 드러냈다. 심지어 베니스의 풍경도 북유럽 인상파의 눈을 거치면 다르게 표현되었다. 

풍광만이 아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의 눈에 들어온 건 고국에서의 삶이었다.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역원, 어리지만 어딘지 조숙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노동의 현장 등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또한 북유럽으로 간 '빛'은 다른 영역으로 확장된다. 낮이 짧은 북유럽에서 화가들은 짧은 낮의 시간 대신, 실내로 들어와 촛불에 의지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실내의 풍광을 자신들의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국의 삶에 발을 딛은 그들의 미술적 시도는 나아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칼 라르손의 가족과 집을 담은 소박한 화풍으로 이어진다.

휴고 심슨의 <꽃따기>는 제목과 달리, 조숙한 한 소녀의 눈빛을 마주하게 된다. 브루노 릴리에포르스가 그린 <여우 가족>이라는 그림은 무심코 봤다가 그 여우 가족이 열중하고 있는 먹이의 실체를 깨닫고 나면 식겁하게 되는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나를 매혹시키는 건 동물의 형태, 조화롭고 완벽한 순간,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유기적 조화이다'라며 허를 찌른다. 악셀 융스테트의 <스위스 채석장에서>도 인상깊다.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 마이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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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 화가들이다. 핀란드의 뭉크라고 일컬어지는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을 보면 유럽의 변방이었던 북유럽에서 한 여성이 화가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여정인가를 알 수 있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그림을 팔아 번 돈조차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그들의 처지가 드러난다. 

북유럽을 떠난 프랑스에 다녀온 여성 화가들은 더 많은 교육과 전시의 기회를 얻었지만 이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부분 결혼 후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그림의 소재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전시된 안나 보레르크의 그림은 그런 한계를 넘어선다. 스스로 극지 탐험가이자 북극 화가로 칭한 안나의 그림에는 노르웨이 북부 지역의 다양한 풍광이 담겨 있다. 
 
자연에 푹 빠져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했다. 
이곳에 머물면서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고 싶었다. 
- 안나 보베르크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 마이아트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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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정서와 특색 살려 

1870년대 덴마트 북구 유틀랜드에 위치한 스카겐으로 모여들 화가들. 항구도 없고 철도도 없었지만 프랑스에서 배웠던 '외광 화풍'을 실현하기에 적절한 장소로 스카겐을 선택했고 이곳에서 예술 공동체를 꾸려 그들의 예술적 작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나아가 이들은 1885년 에른스트 요셉손이 중심으로 84명이 모여 '예술가 협회'를 결성하고 '국가는 예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1887)'등의 책자를 제작하고 스웨덴 미술 작품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1890년 프랑스에서 '상징주의'가 대두되었고 북유럽 화가들 또한 이에 영향을 받았다. '정확한 형태와 현실에 대한 분명한 묘사, 자연 과학에 근거한 표현보다 인간에 내면에 집중'하는 상징주의의 화풍은 북유럽 화가들에게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조국의 정서와 특질을 더욱 강렬하게 묘사해 내고자 하는 방식으로 반영되었다. 특히 리카르드 베르그, 닐스 크뤼게르, 칼 노르스트륌이 스웨덴 바르베리에서 결성한 '바르베리 화파'는 고갱에서 받은 영감을 기반으로 스웨덴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화풍을 형성한다.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새벽에서 황혼까지
ⓒ 마이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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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화풍은 나아가 민족 낭만주의와 만나 자국만의 지역적 특수성, 그곳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삶 등을 그림의 주요한 모티브로 삼게 되었다. 특히 장 자크 루소의 영향을 받으며 아동이 주요한 그림의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1. 혁신의 새벽, 2. 자유의 정오, 3. 거대한 황혼, 4. 아늑한 황혼 총 4부로 구성된 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은 19세기 북유럽 인상주의에서부터 칼 라르손에 이르기까지 79점의 작품을 통해 북유럽의 미술 사조를 역사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한 역사적인 흐름은 차치하고 보더라도 몇몇 유명한 화가들에 의한 미술 사조를 주입식으로 감상하는 틀을 넘어 하나의 사조가 지리적 확장성을 통해 어떤 표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가를 헤아려 볼 수 있다. 비단 그것이 아니더라도 여행 예능이나 유튜브가 아닌 예술로 만난 북유럽의 감성을 '즐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한 시간이 될 것이다. 

태그:#스웨덴국립미술관컬렉션, #새벽에서황혼까지, #마이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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