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9 15:50최종 업데이트 24.05.0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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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자 <타임> 표지 ⓒ 타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30일 자 <타임>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필요성을 언급한 일이 화제가 됐다. 이어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에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가 좀 더 구체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차관보를 지낸 그는 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주된 임무는 중국 억제이어야 하며 미군이 한국에 꼭 주둔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북한은 미국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 문제로 인해 주한미군이 인질로 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국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만약 중국이 한반도에 직접 개입한다면, 그때는 미국이 지원하러 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더 많은 돈을 내지 않을 바에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만, 주한미군 철수 정도가 아니라 주한미군 소멸이 자국에 이익이 되는 나라도 있다.

지난 4월 10일 정상회담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격상시킨 일본이 볼 때는 주한미군 철수보다 주한미군 소멸 혹은 해체가 훨씬 이익이 된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실현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일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주한미군 소멸은 점점 현실성을 얻어간다는 점이다.

일본의 안보관에 부합한 주일미군
 

4월 11일 동중국해에서 합동 훈련 중인 USS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에서 F-18E 전투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한미일 3국 해군은 중국, 북한의 위협에 맞서 사흘 동안 합동 훈련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은 북한과 대결하는 입장에 놓여 있지만, 북한을 최대 주적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일본이 생각하는 최대의 가상적국은 중국과 러시아다.

한국 정부가 북한을 최대 주적으로 간주한다는 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배경에도 묻어 있다. 이 조약에는 북한이 명시적으로 언급돼 있지 않다. 그렇지만, 북한을 겨냥한 조약이라는 점이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10월 1일에 체결된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전쟁과 맥락이 닿는 사안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역사적 맥락이 한국이 누구를 최대 주적으로 생각하는지를 드러내듯이, 미국과 일본의 안보조약 역시 일본이 누구를 최대 주적으로 인식하는지를 알려준다.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은 1951년 9월 8일의 미일안보조약에 기원을 두고 있다. 미일안보조약 제1조는 "하나 혹은 둘 이상의 외부 국가에 의한 교사 또는 간섭에 의해 야기된 일본국의 대규모 내란 및 소요를 진압"하는 데 주일미군이 활용될 수 있음을 규정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하나 혹은 둘" 같은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북한의 침공을 암시하는 "외부로부터의 무력 침공" 같은 구절이 있을 뿐이다. 미일안보조약이 굳이 "하나 혹은 둘 이상"을 언급한 것은 1950년 2월 14일 중국과 소련이 체결한 중소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과 관련이 있다.

미국 의회에서 반공 열풍이 불기 시작한 바로 그달에 두 공산국가가 체결한 이 조약 제1조는 "일본 혹은 일본과 동맹한 국가의 침략"을 받을 경우를 상정했다. 대놓고 일본 국명을 거론하면서 군사동맹을 체결했던 것이다.

당시의 일본은 패망 직후였다. 그런 일본이 볼 때, 중국과 소련 같은 강대국들이 명시적으로 자국을 겨냥한 것은 당연히 두려운 일이었다. 중국과 소련에 대한 그런 두려움이 1951년의 미일안보조약 체결을 추동하는 주요 원동력이 됐다.

주일미군은 일본이 품고 있는 이 같은 안보관에 부합한다. 이 군대는 북한이 아닌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다. 그런데 일본 입장에서 볼 때 주한미군은 그렇지 않다. 주한미군은 "하나 혹은 둘"을 직접 겨냥하는 군대가 아니다. "하나 혹은 둘 이상"의 '이상'과만 관련될 뿐이다.

한국 비용으로 한국에 두는 '주일미군 II'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을 한반도와 대북 방어에 묶어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국은 주한미군에 날개를 달아주려 한다. 한반도에 속박되지 않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군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미국은 9·11테러가 발생한 2001년 9월 '미군 재배치 정책'을 통해 해외 미군기지 선정 원칙을 정리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독일 등과 같이 대규모 미군 병력과 장비를 갖추고 주변 지역에 미군을 급파하는 허브 기지의 위상을 갖는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이 휴전선 이북에만 집중해 주기를 바라지만, 미국은 이 군대가 동북아미군 혹은 극동미군이 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런 미국의 희망이 점점 강렬해진다는 점은 주한미군사령관의 최근 발언들에서도 드러난다. 현재의 사령관인 폴 러캐머라는 사령관 후보자 때인 2021년 5월 18일 상원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 이외의 임무에 투입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청문회 때는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제출하기 마련이라 이 답변은 개인 생각이 아니라 미국 행정부의 희망사항이다.

그는 2022년 9월 19일에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 한반도와 주한미군 임무에 미치는 영향에 대비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벌일 경우'가 아닌 '중국과 대만이 전쟁을 벌일 경우'에 주한미군의 임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을 대북 방어에 묶어두고 싶어 하는 한국 정부를 조금씩 흔드는 발언이다.

작년 11월 6일, 미국은 주한미군 공군을 싱가포르 파야레바르 공군기지에 파견해 미국·싱가포르 연합군사훈련인 코만도 슬링(Commando Sling)에 참여시켰다. 주한미군을 '움직이는 군대'로 만들겠다는 시도를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 의사와 관계없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이런 데서도 나타난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트럼프 2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자신의 싱크탱크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의지는 위에 언급된 엘브리지 콜비의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주한미군의 주 임무는 중국 억제가 돼야 하며, 한국은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지만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한다면 그때는 미국이 지원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트럼프 진영에 속한 그의 발언은 주한미군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군대가 되기를 바라는 오래된 희망을 반영한다.

그처럼 주한미군이 '움직이는 군대'가 되는 것은 일본의 국익에 부합한다. 주한미군이 그런 군대가 되어 김정은뿐 아니라 시진핑과 푸틴까지 견제하게 되면, 일본 입장에서는 '주일미군 II'를 한국 비용으로 한국에 두는 형국이 된다. 일본 안보는 한층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때에 이어 조 바이든 집권기 들어 미일동맹은 한층 견고해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일본의 생각이 미국의 생각으로 표현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아베 신조가 제안한 인도태평양전략이 미국의 세계전략이 되어 있는 것도 그중 한 가지다.

이런 추세 속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을 중국·러시아 견제에 활용하고 싶어 하고, 일본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이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게 자국 안보에 유리하다. 이에 관한 한, 미·일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주한미군이 주일미군 II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한국 영역을 넘나드는 군대가 되면, 바로 옆에 있는 주일미군과의 차별성이 희미해진다. 이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주한미군의 존재 의의를 소멸시키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

미일동맹이 일본 쪽으로 기우는 현실

작년 9월 25일,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통합을 역설한 일이 있다. 그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있지만 한일동맹은 없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 간극을 메우려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극동미군으로 흡수할 필요성이 있다고 발언했다.

한일동맹을 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역사문제 때문에 쉽지 않으므로 두 개의 미군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발상이 담긴 발언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일본의 입장과 가깝다는 점을 보여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월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이 부담을 혼자 짊어지지 않도록 일본이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과거의 미일동맹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이었지만, 지금의 미일동맹은 그렇게 말하기 힘들다. 지난 4월 11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라며 "우리가 함께한다"라고 역설했다.

일본이 더 많은 재정 부담을 떠안겠다는 의향이 담긴 이 발언은 미일동맹이 점점 더 일본 쪽으로 기우는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에서 일본의 입김이 이처럼 커지고 있으니, 미국 동아시아정책의 일환인 주한미군 정책에도 일본의 입김이 더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게 됐다.

<2023년도 방위백서> 제3부 제2장 '일미동맹' 편에서 일본 방위성은 "일미일체(日米一體)가 되는 억지력·대처력의 강화"를 언급했다. 이처럼 자위대와 주일미군의 일체화를 지향하는 가운데, 주한미군이 주일미군과 통합되면 일본의 안보를 위한 최상의 그림이 된다.

주한미군이 극동미군에 흡수되면 주한 극동미군까지도 '미일일체'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와 결을 달리하는 주한미군 소멸 혹은 해체는 일본 안보에 최적화된 극동미군의 창설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경계가 점점 희박해지는 현실은 트럼프가 말하는 주한미군 철수보다 일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주한미군 소멸이 먼저 실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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