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는 영화인의 축제다. 좁게는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영화를 만들고 수입, 배급하며 상영하는 이들의 축제다. 또 글과 영상 등 영화 콘텐츠를 만들고 잡지며 신문으로 이를 유통하는 사람들, 영화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도 한바탕 즐기는 장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축제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역시 영화 팬이다. 영화 산업을, 또 영화 예술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영화 팬과의 만남이야말로 영화제가 존속하는 목적이 된다.
 
대중이며 시민이 그런 것처럼 영화 팬 또한 어느 균일한 집단일 수 없다. 누군가는 <듄> 시리즈에 환호하고, 누군가는 한 시간 동안 풍경만 흘러나오는 예술영화에 박수를 친다. 또 누구는 드라마를, 누구는 액션을, 누구는 공포를 즐기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다른 이의 취향에 동의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 같은 관객의 선호 측면에서 보자면 영화제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특정한 색깔에 집중해 이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연을 확장해 가며 종합영화제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앞의 사례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뒤엔 전주국제영화제를 성공사례로 들 수 있겠다.
 
 영화 <토이 스토리> 포스터

영화 <토이 스토리> 포스터 ⓒ JIFF

 
전주에서 다시 꽃 피운 픽사의 전성기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해부터 월트디즈니컴퍼니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외연 확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엔 '스타워즈 데이' 행사를 통해 한국의 <스타워즈> 팬들을 불러 모았다. 올해는 그 못지않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팬들을 모아 특별전을 개최해 관심을 모았다. 이름하야 '픽사 in 전주 with <인사이드 아웃 2>' 전이다.
 
내달 예정인 <인사이드 아웃 2> 개봉에 발맞춰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의 거리' 인근에 별도의 팝업스토어와 상영공간을 마련해 픽사 애니메이션을 정기 상영하고 있다. 영화제 둘째 날 상영된 <인사이드 아웃>을 필두로, <토이 스토리> 시리즈,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월-E> <업> <코코> <소울> <엘리멘탈> 등이 영화제 기간 동안 설치된 픽사돔에서 관객과 만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픽사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속편이 이미 4편까지 나왔고 5편 또한 준비 중에 있다는 사실은 그 뜨거운 인기를 증명한다. '더없이 완전한 이별'이란 평가까지 들었던 3편을 뒤로하고 4편이 나와 버렸고, 이어 5편까지 준비하는 디즈니의 속내야 분명하다. 캐릭터 사업과 관련 판권으로 영화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디즈니다. 버즈와 우디라는 엄청난 캐릭터에 더하여 태생부터 '장난감 이야기'라는 돈냄새나는 설정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영화 <토이 스토리> 스틸컷

영화 <토이 스토리> 스틸컷 ⓒ JIFF

 
뜨거운 관심 모은 장난감들의 모험
 
<토이 스토리>가 전주를 찾은 관객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은 데는 이러한 영향이 없지 않을 테다. 시리즈를 종결시킬 뻔했던 잘 만든 3편을 빼고 1, 2편만 상영을 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많은 관객들이 픽사돔을 찾은 것이다. 이들은 픽사 애니메이션이 낳은 캐릭터 가운데 가장 유명한 듀오를 찾았고, 야외에 간이 돔을 설치한 독특한 상영관에서 그들의 활약을 즐겼다.
 
<토이 스토리>는 픽사와 디즈니의 전설적 애니메이터 존 래시터의 작품이다. 6살 소년 앤디(존 모리스 목소리)에겐 수많은 장난감들이 있다. 강아지 슬링키(짐 바니 목소리), Mr.포테이토(돈 리클스 목소리), 공룡 렉스(월레스 숀 목소리), 돼지저금통 햄(존 래츤버거 목소리), 램프 인형 보 피프(애니 파츠 목소리), 카우보이 인형 우디(톰 행크스 목소리) 등이다. 그중 우디는 앤디가 각별히 아끼는 인형이다.
 
처음부터 앤디가 제일이었던 건 아니다. 흔히 그러하듯 앤디의 장난감들도 제각기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새 장난감이 눈에 들어오면 앤디는 언제 제가 다른 장난감을 좋아했냐는 듯 옛 것을 밀어내고 새것을 취하기 일쑤였다. 말하자면 우디는 앤디가 가장 최근에 가진 장난감이며, 곧 제 전성기를 마무리할 운명일지 모를 일이다.
 
 영화 <토이 스토리> 스틸컷

영화 <토이 스토리> 스틸컷 ⓒ JIFF

 
장난감 사이 싹트는 우정과 신뢰
 
<토이 스토리>는 인간이 아닌 장난감들의 세계에 주목한다. 이들은 인간의 눈이 닿지 않을 때 저들의 세계를 살아간다. 우디 이하 슬링키와 Mr.포테이토, 렉스, 햄, 보 피프 등이 어우러져 마치 같은 마을에 이웃한 주민처럼 재미나게 지내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멋진 일은 앤디의 관심을 받는 것이고, 최악의 상황은 그의 애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장난감의 세계에서 우디가 가장 행복하고 또 불안한 건 자연스런 일이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만다. 앤디에게 최신형 액션 장난감 버즈(팀 알렌 분)가 주어진 것이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고 디지털 음성까지 나오는 다재다능한 장난감이다. 기능이라곤 딱히 없는 우디가 당해낼 수 없는 상대다.
 
앤디의 사랑을 독차지한 버즈는 제가 장난감이 아닌 전사라고 믿는다. 외계에서 지구로 불시착한 전사라고 말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것 같은 형국에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버즈를 우디는 제거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게 흘러가고 버즈와 우디는 힘을 합쳐 위기를 타개하게 된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전 시대의 영광을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토이 스토리>는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 층인 아이들이 흔히 갖고 있는 기대와 환상, 즉 장난감에게 저마다 자아가 있고 그들의 비밀스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구체적으로 펼쳐낸다. 또한 아이들이 제 짧은 삶 가운데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즉 새 상대에게 밀려내는 옛 것의 위기감을 장난감의 이야기로 빚어낸다. 동생을 가져본 아이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실망과 공포를 영화는 현실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토이 스토리>의 진정한 매력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경쟁관계였던 우디와 버즈가 마침내 서로를 신뢰하는 최고의 친구로 거듭난다는 점이다. 그 우정이 빚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다른 어느 버디영화 못잖게 진지하고 섬세하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우정이 어른의 그것보다 못하다고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장난감의 우정이 인간의 그것보다 못하지도 않은 것이다.
 
우디와 버즈는 이로부터 장장 20여 년의 여정을 함께 해오는 중이다. 앤디와의 눈물겨운 이별 뒤에도 말이다. 디즈니는 우디와 버즈의 동행을 관뚜껑에 박힌 못을 뽑으면서까지 이어갈 태세이니, 어쩌면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이들과 만난 어린 관객도 평생토록 그들의 우정 어린 모험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JIFF 토이스토리 픽사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