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참 행사가 많은 달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일 것이다. 어린이 날이 피어오르는 꽃 봉오리에 대한 찬사라면, 어버이 날은 한 계절을 다 보낸 아름드리 나무와 같은 삶에 대한 감사랄까.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가 부담이 되어 간다면? 나이드신 부모님들의 가장 큰 소원 중 하나는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돌아가시는 것일 게다. 어디 자식들에 대한 부담뿐일까.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생로'보다 어려운 '병사'의 통과의례가 숙제처럼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화창한 계절 5월, EBS 다큐 프라임은 3부작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를 통해 이 화두를 다뤘다(5월 13일, 14일 방송분).

1부. 완벽한 하루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 EBS

 
"죽으러 왔는데 이렇게 편안해도 되나요?" 

다큐는 2023년 봄부터 가을까지 호스피스 병동을 살핀다. 허용된 입원 기간은 60일, 입원 환자 중 70%가 그 안에 돌아가신다. '죽으러 가는 곳', '슬프고 어두운 곳'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있지만, 관계자들은 '호스피스는 잘 살기 위한 곳'이라고 말한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목욕 시간. 꽁꽁 묶여 후송되기도 하고, 막상 제대로 목욕조차 하기 힘든 현실이지만 자원봉사자와 간호사들은 정성을 다해 (환자를) 목욕을 시키고 마사지까지 해준다. 겨우 목욕하고 이발을 했을 뿐인데 그간 '다루어지기만 하던' 환자는 "여기가 천국"이라며 감동받는다. 마취가 되어 있어도 사람의 의식은 자신이 함부로 다루어지는 것을 기억한다고 한다. 호스피스는 그 슬픔까지 어루어만져주려 애쓴다.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 EBS

 
호스피스는 내 몸이 완치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면서 시작된다. '걷는 연습을 할까요?'라는 환자에게 '이제 조금씩 내려놓으셔야 해요'라고 말하는 곳이 호스피스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수용해야 하는 시간. 수용하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그냥 사는 거죠, 똑같이' 하지만 아직 '죽음'은 아니기에, 죽음까지 잘 살아가기 위해 서로 애를 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호스피스 병원의 라운지에서 직원들이 '과수원길'을 부른다. 그 노래의 관객은 병상의 환자들이다. 나란히 누워서 듣는 환자들, 어느 틈에 노래를 따라 하는 이도 있다. 죽음이 두려워 '나쁜 일이 빨리 왔으면' 하던 환자도 조금씩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살핀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아픔을 조절하느라 수면 상태와 같은 상태로만 머물다 임종을 맞이하기가 십상이라 한다.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말기암 환자에게도 그럴 수 있도록 처지를 해준다. 

위암 말기 환자였던 김현진씨는 말했다. 죽어가지만 이곳에서 여전히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대받음을 느꼈다고. 평생을 가장으로 살아왔던 그는 그의 삶에 걸맞은 존중과 배려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곳을 다시 찾은 딸, 죽음과 홀로 독대하는 대신 엄마가 이곳 사람들의 따스한 보살핌 속에 말도 많이 하고 웃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떠나 좋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임종 전 마지막 시간을 충만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죽어가는 이의 '존엄성'이라고 호스피스 진료원장 정극규씨는 전한다.  

우리 사회는 아이가 태어나면 손을 들어 반긴다. 반면 그 맞은편에 있는 죽음에 대해서는 그저 의료적 과정으로 여긴다. 사회의 일원으로 한 평생을 살아낸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다. 그저 약물 처치로 아프지 않게 하는게 문제해결은 아니지 않냐고 다큐는 반문하다. 죽음 앞에서 인간다움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2부.집에서 죽겠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 EBS

 
한때 일본 여성학의 레전드, 사회학자이자, 도쿄대 교수를 역임한 우에노 치즈코씨는 이제 75세가 됐다. 그런 그녀가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한다. 일본 전역을 돌며 강연도 한다. 그는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건 '분노'라고 말한다. 바로 '평안한 죽음'을 위한 투쟁이다. 

<1인 가구의 노후가 위험해>라는 책을 펴낸 우에노씨. 그녀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듯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 사회에서 1인 가구로 맞이하는 노후는 주요한 사회적 이슈다.   

우리는 혼자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걸 '고독사'라 부른다. 고독이라는 어감 때문인지 몰라도 홀로 죽어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우에노씨는 반기를 든다. '고독사'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일뿐, 혼자 살아왔다면 혼자 죽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고 묻는다.

왜 꼭 죽음을 가족과 함께, 가족에 기대어 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호스피스는 보편적이지 않고, 요양원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그냥 살던 곳에서 죽어가는 것도 자연스런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고독사'를 '1인 재택사'라 부르자 주장한다.

상당수의 일본 노인들은 죽음을 앞두고서도 살던 곳에 머물고 싶어 한다. 나가노 현의 경우 방문 진료 의사제를 활용하자 입원 대신 재택 간호율이 높아졌다. 위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마시마씨는 의사의 진료를 받으며 집에 머물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 EBS

 
우에노씨는 늙음은 피할 수 없지만 사회적 돌봄이 있다면 자신이 죽어가는 방식에 대해 자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일본은 개인 부담 10%로 사회적 간병 보험이 24년째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돌봄 인력이 부족해지는 등 문제가 생기자 개인 부담을 20%로 늘리는 등 간병 보험을 바꾸려 하고 있다. 우에노씨는 '개악'이라며 반대운동 중이다.

이 운동의 목적 역시 죽음 앞에서도 인간으로서 자신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내느냐 하는 것이다. 
EBS다큐프라임 내마지막집은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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