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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가 1세, 6세 아이를 둔 수습 워킹맘에게 새벽과 휴일근무를 강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자 채용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2023년 11월)이 있었다.

대법원은 "부모의 자녀 양육권은 헌법상 중요한 기본권이고,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으로 발생하는 근무상 어려움을 육아기 근로자 개인이 전적으로 감당하여야 한다고 볼 수 없고, 사업주는 그 소속 육아기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배려의무를 부담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사업주의 배려가 일·가정 양립의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고 하면서도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근로자가 처한 환경, 사업장의 규모 및 인력 운영의 여건, 사업 운영상의 필요성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의무의 구체적 내용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는 평가다.

노동자는 회사에 어디까지 돌봄 권리를 요구할 수 있나

그러나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의무의 내용은 노사 양쪽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사업주가 노동자의 양육권을 위해서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허용은 사업주의 명확한 법적 의무이지만 육아휴직으로 비워진 자리에 대체인력을 구하거나 남은 인원의 업무량을 줄이거나, 육아기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조정하고 연장근로를 제한하는 등의 육아 지원 조치는 여전히 사업주의 "노력"의 영역이다. 육아휴직 제도는 있지만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는 없으며, 사업주의 이익 앞에서 양육권은 언제든지 침해될 수 있다. 

돌봐야 할 대상이 자녀가 아닌 경우에는 어떤가. 육아휴직에 비해 가족 돌봄 휴직은 신청의 문턱이 더욱 높다. 조부모, 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손자녀가 아프거나 노령인 경우 가족 돌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의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되거나 휴직을 신청한 본인 외에 다른 가족구성원이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볼 수 있는 경우 사업주는 휴직을 허용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의 가족 돌봄 제도는 노동자나 그의 가족구성원의 '독박 돌봄'을 전제로 하며 그마저도 사업주의 배려에 기대야만 가능하다. 나이 든 부모,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볼 권리는 결국 혈연관계에 있는 '독박 돌봄자'임을 증명해야만 얻을 수 있다. 

공포와 혐오의 대상, 돌봄

장시간 노동에다 연차조차 이용하지 못해 본인 돌봄도 어려운 노동하는 삶에서는 가족 돌봄 제도는 낯설기만 하다. 유급노동이 최우선이 되고 언제라도 직장이 요구하는 대로 자기의 시간을 바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상적'인 노동자가 되는 상황에서 돌봄과 직장은 양립하기 어렵다.

가족을 돌보는 일은 직장을 그만둬야만 가능한 일이 됐고, 그래서 사회적 고립을 감수하는 공포 그 자체다. 생로병사, 삶의 모든 순간에 타인의 돌봄이 필요함에도 돌봄은 생산성이 없는, 가치 없는 행위로 여겨져 값싼 유료노동으로, 엄마, 며느리, 딸, 누나 등 혈연관계에 있는 여성의 무급노동으로 해결해 왔다. 돌봄을 값싼 시장에 맡기거나, 가족 중 한 명이 독박을 쓰거나, 특히 여성의 의무로 고정하는 것 외에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 사회에서 돌보는 노동은 누구나 벗어나고픈 혐오의 대상이다. 

또한 돌봄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을 전제로 한 '가족' 돌봄에 그치고, 사회적 책임은 시늉이거나 호의나 배려의 수준일 뿐, 권리를 보장할 '사회의 의무'로 이해되지 못한다. 돌봄의 부담을 직장과 사회가 나눠줄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돌볼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돌봄을 저렴한 비용으로 타인에게 맡기고 노동시간과 가족시간에서 벗어나 나 홀로 시간이나 소비로 채우는 공허한 시간만이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믿게 된다.
 
아무나가 아무나를 돌볼 수 있을 때, 우리 모두 돌봄에서 해방될 수 있다.
 아무나가 아무나를 돌볼 수 있을 때, 우리 모두 돌봄에서 해방될 수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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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돌봐라: 돌봄의 전환

책 <돌봄과 인권>의 저자(김영옥·류은숙)는 '우리 모두가 취약한 존재이며 항상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다는 상호의존의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돌봄의 위기를 넘어설 방법이라고 말한다.

돌봄이 누구에게 맡기고 맡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공동의 과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럴 때 전문 돌봄 노동자와 돌봄 대상자, 돌봄 소비자 모두가 돌봄을 함께 구성하는 참여자이자 협력자가 된다고 짚어낸다.

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각자도생의 논리에 저항하며 일상에서부터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맺자고 그렇게 돌봄 위기 사회를 함께 돌봄사회로 만들어가자고 손을 내민다. 가족 돌봄, 가족 내 여성의 돌봄, 전문 돌봄자의 독박 돌봄이 아니라, '아무나'가(가족이든 아니든, 여성이든 아니든, 전문 돌봄자만이 아니라) '아무나'를(돈이 없는 사람도, 가족이 없는 사람도, 나 자신도 돌봄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돌볼 때 우리 모두가 돌봄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나 돌보는 돌봄 사회로 전환하려면 누구라도 돌보는 데 쓸 시간이 필요하다. 장시간 노동, 과밀한 노동, 불안한 노동, 불건강 노동을 하는 삶에서는 돌봄이 불가능하다. 돌봄 있는 삶을 위해서는 돌볼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적당한 노동시간, 연장근로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시간 임금의 보장, 노동시간에 대한 예측 가능성 모두가 필요하다. 또한 서로 돌볼 시간을 넘어 돌봄이 기쁨이 되는 삶을 위해서는 일과 생활의 균형 뿐만 아니라 돌볼 책임도 평등하게 분배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송윤정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돌봄, #양육, #노동시간, #독박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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