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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이다. 신생기업이 한창 붐이 일 때, 30대였던 김현수씨는 죽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대수명이 높아지던 시점에서 젊은 사업가는 죽음을 심도 있게 고민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민 끝에 '웰다잉'이란 사업체 문을 열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영상을 남기고 자서전으로 후손과 간접 소통을 하는 것이 '웰다잉', 떠나는 이의 마지막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시작했다.

하지만 김씨는 시작한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업을 접었다. 접근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르신을 찾아 말씀드리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십시오'였는데,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존엄사나 웰다잉 같은 용어가 정말 생소했거든요."

김현수씨가 사업을 정리하고도 10년이 더 지난 현재. 웰다잉이란 용어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최근에는 AI 기술 발달로 생사를 넘나드는 만남도 종종 언론을 통해 나오곤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지는 질문이다.

고령사회 맞은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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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인구 증가를 이끄는 나이대가 60대 이상인 것은 더 이상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용인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2000년대 초기와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아이 손을 잡고 용인으로 이사 온 가족이 이어졌다.

그들이 필요한 시설 요구는 이어졌다. 학교가 필요했으며, 각종 놀이 시설도 있어야 했다.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도 충분해야 했으며, 병원도, 각종 행정기관도 삶에 필수 조건이었다.

용인시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해소에 나섰지만 시민은 그 불편함을 오롯이 흡수하고 있었다.

2023년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할 만큼 세월이 흐르자 용인 공동체 내부는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지역 차는 있지만 그때와 비교해 학교도 놀이 시설도, 행정기관도 크게 늘었다.

시민 일상도 그에 맞춰 질적으로 성숙해졌다. 충분히 만족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굳이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될만한 지역도 꾸준히 늘었다. 도시가 차츰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여길 만했다.
   
그 사이 사회는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시대가 변하면 도시 모습도 변했다. 용인시도 마찬가지다.

시가 파악한 용인시 인구 동향을 보면 2019년 이후 인구 증가율이 점차 둔화하다 2022년 소폭 감소한다. 하지만 공동주택 입주 물량 등으로 증가세로 전환됐다. 인구 증가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출생아는 2018년 6598명에서 2022년 5691명으로 900명 이상 줄 만큼 저출생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 고령인구는 같은 기간 4만 명 넘게 늘었다.

용인시민 전체 인구 중 20%에 육박하는 인구가 60세 이상이다. 신체적·사회적으로 나이는 이전과 비교해 젊어졌다고 하지만, 심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다.

용인 사는 60대 이상 시민들 만나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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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에서 고령화가 심각한 처인구 백암면을 찾았다. 길거리를 오가는 주민 연령대를 판단하기에는 쉽지 않다. 나이대가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시민 5명에게 나이를 묻자 이 중 3명은 70대에 이르렀다. 신체적 나이는 그만큼 불명확해져 보였다.

박호철(72)씨는 용인으로 이사 온 지 30년이 조금 넘었다. 충남 인근에서 과수업을 하다 용인서 식당을 운영했다는 박씨는 나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평소에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잘 세지 않아. 나름 젊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장사를 안 한 지도 10년이 더 넘었어. 특별히 하는 일 없어. 과거에 대해서도 특별히 기억되는 일도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젊은층 인구가 많은 기흥구 동백동을 찾았다. 기흥구 동백 중동 일대를 찾았다. 먼 거리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대형마트에 들어가니 평일 오전 시간대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부는 다소 썰렁했다.
   
들어가는 주차장 입구에서 만난 황요훈(66)씨는 내부에 있는 식당에 지인과 약속이 있어 왔다. 직장 은퇴한 지 5년이 조금 넘어 최근 일상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쁘게 생활하던 시절에는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한 6년 특별한 일 없이 보내니 일상이 허전해진 느낌이 많이 들어요. 낮에는 집에 있는 게 싫어 외출을 자주 하는데, 오늘처럼 지인 만날 기회도 별로 없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는데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요."

경로당도 찾았다. 기흥구 신갈동에 있는 새천년 아파트 한 경로당에서 만난 이종계(73)씨는 지역신문 기자라는 말에서부터 궁금한 점을 한정 없이 물었다.

선거가 한창이지만 정작 정치나 경제, 하물며 용인 관련한 내용도 없었다. 아파트에 어떻게 찾아왔으며,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지도 상당히 궁금하다고 했다.

근처에 몇 되지 않은 주민들 역시, 시큰둥하다는 듯하면서도 물음에는 각자 사연을 조금씩 건넸다. 생활에 필요한 게 없느냐는 물음이 나오고 나서야 중구난방식 대답이 하나로 묶였다. "많지."

'많은' 것을 하나하나 묻지 않았지만 눈치껏 대부분은 알 듯할 정도로 그들 대화에서 개인정보나 비밀 따위는 크게 없어 보였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필요한 거도 별로 없어지고 욕심도 생기지 않아. 그냥 동네 사람들하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밖으로 오가는 사람 구경하는 것이 재밌지. 가족들도 전부 외지 생활을 하고 있는데, 별로 보고 싶고 그립고 한 마음도 없어." (이종례씨)

그들에게 '죽음'을 묻다

어려웠다. 일상을 묻고 대답을 듣는 데는 수초면 충분했다. 대답을 해주지 않은 질문도 없었으며, 표정도 진부한 질문에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문득 새롭다는 듯 웃는 모습도 많았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죽음', 웰다잉이란게 무엇일지 말이다.

처인구에서 만난 박호철씨는 죽음이란 물음에 한참을 고민한 뒤 꺼낸 첫마디는 '글쎄'라는 말이다. 더 묻고 싶어도 특별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동백동에서 만난 황요훈씨는 같은 물음에 그냥 특별히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죽음보다는 앞으로 남은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더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다. 주변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여와도 아직은 남의 일 정도로 여기고 싶어 한다.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이종례씨는 갈 때는 순서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한 번쯤 맞아야 할 것이니 순서에 구애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어떤 인생의 마무리가 되길 바라냐고. 긴 세월 아프지 않고, 안타까운 사고는 피하고 싶다는 것이 바람 전부다. 아주 긴 세월을 욕심내거나, 지금까지 얻지 못한 좋은 기회를 한 번쯤 가져 보고 싶다는 바람도 없다.

박호철씨 말이다. "잘 죽는다는 말이 있잖아. 호상이라는 말도 있고. 자기 죽음을 예상하거나 상상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닌데, 남은 사람 고생 안 시키면 그만이지."

이종례씨도 무언가 남기고 싶다거나 기억되고 싶은 마음은 그리 많지 않다. 웰다잉이란 그런 것이 아닐지 생각하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혼자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결국 죽음이란 마지막도 혼자일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젊었을 때는 주변 사람이 떠나면 불쌍하고 안타깝고 하잖아. 지금도 마음은 비슷한데 죽는 게 무섭다거나 피하고 싶은 마음은 많이 없어. 그냥 가야 할 길 말이야. 제정신 있고 사지 멀쩡할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조심조심 사는 게 최고야. 괜히 뭔가를 준비하면 더 외롭고 더 걱정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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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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