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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이 끝난 작년 가을쯤, 부모님은 어디선가 병아리 몇 마리를 사왔다. 세일을 해도 5천원이 넘는 계란 가격에, '이제 계란은 자급자족 하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삐약삐약'과 "짹짹"의 중간쯤 소리를 내는 병아리들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학교앞 문방구 앞에서 팔던 노오란 병아리도 생각났다.

마침 일요일이라 사료를 살 곳이 마땅치 않아, 병아리 분양 농가에서 한주먹 얻어온 사료를 넣어주니 참 맛있게도 먹었다.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에 혹여 감기라도 걸릴까 봐 한쪽에 넣어둔 헌 옷 위에서 병아리들은 꾸벅꾸벅 졸았다. 새 아침이 밝아오면 잰걸음으로 함께 몰려 다니고 밤이 되면 서로의 온기를 나눠가며 잠이 들었다.

"병아리 중에 한 마리가 덩치가 작고 달달 떨고 있으니까 나머지 애들이 감싸주더라."

부모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약육강식이 당연한 동물의 세계에서조차 따스함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닭들을 위해 벽돌과 나무로 평형대를 만들어주었다. 아빠의 작품.
 높은 곳을 좋아하는 닭들을 위해 벽돌과 나무로 평형대를 만들어주었다. 아빠의 작품.
ⓒ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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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며, 기존의 닭장을 3배 이상 확장했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닭들의 습성에 딱 맞는 평행대도 벽돌과 나무로 만들어주었다.

그것도 부족한지 닭장 밖으로 펜스를 치고 그물망을 덮어 낮에는 밖에서 마음껏 돌아다닐수록 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닭장을 열어주고 해가 늬엿늬엿 질 때쯤 닭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말을 알아듣는 것은 아닐 텐데, 참 신기하게도 문을 열고 닭을 부르는 아빠의 음성에 닭들이 종종 걸음으로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에 본가를 찾은 언니와 난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닭장이 우리방보다 더 넓겠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온몸을 움츠리게 했던 겨울이 드디어 지나가고 초록 잎사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숙원 사업도 빛을 발했다. 계란 한 알 먹겠다고 6개월을 기다리다니... 누가 보면 '그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귀한 청계알을 먹는다며 즐거워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그 기다림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계란 자급자족 2주만에 문제가

신선하고 고소한 계란을 먹은 지 2주도 안돼 문제가 생겼다. 알을 낳으러 둥지 위에 올라간 암탉이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이다. 물과 사료를 먹는 아주 잠깐의 시간만 내려왔다가는, 하루 종일 알을 품었다. 부모님은 처음엔 내려오도록 이리저리 쫓아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알을 부화시키려는 암탉, 계란을 먹으려는 사람. 승자는 닭이었다.

암탉이 알을 품은 지 21일째 되는 날, 아침밥을 먹고 닭장에 내려갔더니 어느새 알을 깨고 보송보송한 털을 뽐내고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서로가 가족인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 엄마 닭이 가는 곳을 졸졸졸 따라다녔다. 닭장 안에 사람이 들어가면 깜짝 놀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서로를 똑닮았다.
 
꼭 붙어다니는 병아리남매
 꼭 붙어다니는 병아리남매
ⓒ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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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가 태어난 후로 잠잠했던 가족 단톡방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엄마 닭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병아리 4남매, 닭장 기둥에 묶어놓은 상추 한 꾸러미...

아직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절반 이상은 흔들리고, 카메라 렌즈에 본인의 손가락이 찍혀서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또 좋다.

평생을 일하느라 취미라곤 일을 끝낸 후 보는 TV 드라마가 전부인 부모님에게 생긴 소확행.

이미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자식들은 한 달에 한 번 보는 것이 전부지만, 닭들이 그들의 인생에 활력을 주고 있음에 참 다행이지 싶다.
 
병아리 사진을 보내온 엄마와 나눈 메시지
 병아리 사진을 보내온 엄마와 나눈 메시지
ⓒ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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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내온 메시지에 코멘트를 달고, 다음 사진을 기분 좋게 기다려본다.

태그:#병아리, #청계키우기, #힐링, #농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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